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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 찾은 도시는, 독일 남서쪽 끄트머리에 있는 Freiburg다.

프라이부르크는 언젠가 보았던 다큐멘터리로 기억에 남았다. 루르 공업지대의 재생 사례도 다큐멘터리를 통해서 보았던 것 같은데, 언제 보았는지 기억도 나지 않는 다큐멘터리 몇 편이 나를 독일로 이끈 것이다.


보통 영국이 날씨가 굉장히 안좋은 곳으로 다들 인식을 하고 있겠지만, 사실 프랑스, 독일, 네덜란드 등 모두 비슷한 기후를 가지고 있다.

한 여름이 아니라면 흐린 날이 많고 비가 조금씩 자주 오는 편이다. 

내가 독일을 여행 했을때에는 여름철이라 대체로 날씨가 좋았지만, 프라이부르크에서는 온종일 비가 오락가락 했다.

하지만 프라이부르크는 독일에서 일조량이 (그나마) 가장 많은 도시라서 와인제조가 발달 되어 있다고 한다.

프라이부르크가 친환경 도시가 될 수 있었던 데에는 이런 기후적인 특성도 무시할 수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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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에서 도심까지 이어진 보도블럭의 패턴이 특이했다.

일부 상점 앞에서는, 그 상점에서 판매하는 물건의 성격에 따른 문양이 새겨져 있다고도 한다. 나는 아쉽게도 놓치고 말았다.


독일답게 자전거도 많이 보였다. 기차를 타고 도시를 이동할때도, 자전거와 함께 이동하는 여행객들이 많이 보였다.

특히 독일인 여행객들은 40대 이상의 부부를 많이 보게 된다. 여행을 많이 하는 나라 다운 모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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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세에 쌓은 요새가 아직 남아있고, 사진에 보이는 것은 프라이부르크에서 가장 오래된 탑이자 요새의 출입구다. 여전히 마을의 중요한 길목이다.

바로 오른편 건물에 맥도날드가 간판을 달면서 맥도날드탑이라는 비아냥을 듣는다고 한다.

오른편 건물이 문화재는 아니라서 법적인 문제가 되지는 않나보다. 맥도날드는 엄청난 광고효과를 누리겠지만, 아쉬움이 있다.


사진 아랫쪽을 보면 트램이 달리는 레일과 베히레가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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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히레(Baechele)


프라이부르크에서 가장 유명한 것 중 하나다.

도심 곳곳을 노상으로 개천이 흐른다. 가축에게 물을 먹이고 화재를 막기위해 인공으로 만든 총 길이 15km의 베히레는 그 역사가 800년이 되었다. 

이런 개천은 독일 여러곳에 있었지만 지금 남은 곳은 프라이부르크가 유일하다.

사실 이렇게 길 위로 물이 흐르게 되면 금새 오염이 되어 악취가 나기 쉽상이다. 실제로 유럽에서 베히레와 비슷한 형태로, 빗물이나 생활하수가 배출되던 때가 있었음에도 지금까지 그것을 유지하고 있는 도시가 많지 않은 것은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프라이부르크의 베히레는 처음 설계때 부터 많은 신경을 쓴 듯 하다.

토목적으로는 도시외곽을 흐르는 드라이잠 강에서부터 도심의 가장 높은 곳까지 수로를 연결 한 뒤, 구배에 의해 자연스럽게 물이 도심을 돌고, 다시 자연하천으로 흘러 들어가도록 설계되었다.

지금은 항상 1급수 수질을 유지하고 있으며, 시민들 또한 베히레에 대한 애착이 강하기 때문에 누구 하나 베히레를 더럽히지 않는다. 

늘 맑고 깨끗한 물이 흐르고 있다.

여름철이 되면, 시민들은 발을 담구고 졸졸졸 흐르는 물소리를 들으며 더위를 식힌다. 발담구는 것 정도로 오염까지는 아니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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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히레에는 요런 조각배도 떠 다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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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도날드 간판에 비하면 이런 광고는 사랑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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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eiburger Münster앞에는 시장이 선다.

부슬비가 왔지만 시장은 여전히 활기를 띄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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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을 여행하다 보면 교회 앞은 넓은 광장이 있고, 그 광장에서 종종 시장이 열리는 것을 볼 수 있다.

성당 앞의 널찍한 광장은 교회를 축조할 때 꼭 필요한 공간이다. 필요한 돌을 쌓아두고 다듬는 작업장으로 쓰이기 때문이다. 

그 주변으로는 교회 건설을 위해 일을 하는 노동자를 대상으로 하는 식당 등이 생기게 되고, 교회가 완공된 후에는 교회와 그를 둘러싼 상점이 남아 광장을 만들게다.

중세부터 교회는 마을의 위치적, 정신적 중심이었기에 늘 사람들이 모여들고,  주변에서 상업행위가 이루어지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이렇듯, 우리가 동경하는 유럽의 아름답고 사람냄새 나는 모습들은 오랜 시간 자연스럽게 만들어졌다.

어느 순간 낡은 것을 싹 다 밀어버리고 만들어서는 볼 수 없는 모습이다.

우리나라의 도심에 세워지는 교회건축에서 유럽의 교회와 같은 도시적 역할을 기대하기 어려운 이유이기도 하다.


도심 교회에서 우리나라의 경우, 수 많은 교인들이 승용차를 끌고오기 때문에 교회건물보다 더 넓은 부지가 주차장으로 쓰이기도 한다.

교인이 아니라면 주차장이 텅텅 비어있을때 조차 주차하는 것을 금지하는데, 사유지라니 뭐 어쩌겠는가. 근데 세금은?


교회를 계획하는 단계에서부터, 그 넓은 부지에서 평소에는 도시적 행위가 이루어질 수 있는 여지를 만들어주면 좋을 것 같다.



Vaub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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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심에서 트램을 타고 20분정도 거리에 있는 보봉단지는, 지금의 프라이부르크가 친환경 녹색도시라는 명성을 얻게해 준 일등공신이 아닐까 싶다. 


우선 프라이부르크에서 환경운동이 시작된 가장 가까운 과거는 1970년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동화 헨젤과 그레텔의 배경이 되기도 한 Black Forest흑림에 환경오염과 산성비로 인한 피해가 나타나고, 인근에 핵발전소를 지으려는 연방정부의 계획이 알려지면서부터 대대적인 환경운동이 시작된다.

프라이부르크를 집결지로 학생, 반핵운동단체 그리고 전통적 가치관을 고수하는 시민 층에 이르기까지 각양 각색의 구성원들로 이루어진 반핵 연합전선이 형성되었고 이들은 지금까지도 시의 정책에 영향을 미치는 시민으로 자리 잡는다.


1986년 체르노빌 사고 이후, 시는 태양에너지를 새로운 주요 에너지 자원으로 선언하게 된다. 

태양광시설을 늘리고 에너지절약주택을 개발하고 보급하고 있으며, 92년 이후에는 시가 매각하는 토지에는 친환경건축만을 허가하고 있다. 

이런 에너지정책은 교통분야와 폐기물분야와 함께 연계되면서 프라이부르크를 진정한 친환경 도시로 탈바꿈시켰다.


보봉단지가 특히나 흥미로운 것은,  이 곳이 1차대전 때 독일군의 주둔지 였으며, 1992년 연합군이 독일에서 철수를 할때까지는 프랑스 군의 주둔지였다는 사실이다.

1995년, 이 곳의 활용방안에 대한 시민 공청회를 열었고 이때 보봉포럼이 만들어졌다.

보봉포럼은 새로운 생태마을을 만들기 위한 주민 아이디어로 시작되어 차없는 마을, 에너지 자립을 실현하는 마을을 만들기 시작했다.

그들의 실험은 아직 끝나지 않았지만, 이미 보봉단지는, 태양광과 바이오매스로 에너지를 생산하고 최소한의 에너지만을 소비하는 명실상부한 에너지자립 마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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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 내의 공동주차장 중 하나다.

보봉단지의 거주민들은 매년 자동차를 소유하지 않고 있다는 내용에 서명 해야한다. 

승용차를 포기한 주민은 무료 대중교통 이용권과 기차 이용 할인도 받을 수 있다. 꼭 승용차가 필요할때는 주민 모두 공유하는 자동차를 이용한다.

그럼에도 개인 승용차를 소유하겠다면, 공동주차장 이용료를 2009년 기준으로 연간 17,500유로에 사용료를 매달 추가로 내야한다. 

개인 주차공간을 만드는 것은 금지된다.

2009년 기준 약 70%의 주민이 자동차없는 삶을 살고 있으며, 보봉으로 새로 이사 오는 주민의 57%가 이사오는 즉시 자동차를 포기한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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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봉 단지의 곳곳에서 이런 그림이 그러진 표지판과 안내를 볼 수 있다.

이 표지는 거주구역 내의 길이며, 길에서 아이들의 놀이 등이 허용 된다는 것이다.


인터넷에서 보봉단지에 대한 글들을 검색 해보면, 단지 내에서는 차량 통행이 금지된다고 쓰인 글이 몇몇 있다.

내가 알기로 금지가 된 것은 아니다.

보봉은 차량진입을 금지시키는 것 보다 더욱 효율적인 방식으로 차량의 통행을 억제하고 있다.


보봉단지를 보여주는 지도다. 

붉은색으로 칠해진 길이 일반적으로 차량이 다닐 수 있는 도로다. 

오른쪽의 넓은 도로가 프라이부르크 도심에서 외곽으로 뻗어나가는 길이고, 보봉은 그 옆에 붙어있다. 이 도로 조차 왕복 3차선에 불과하다.

지도 아랫쪽 붉은 도로는 트램 정차장도 있고 보봉 단지내에서 가장 넓은 길이라고 볼 수 있겠다. 왕복 2차선 이다;

도로가 마을 외곽을 돌아나간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보행자는 주로 트램 정차장과 상점들이 있는 아랫쪽 길을 많이 이용할 것이다. 

마을 공동주차장은 그 반대인 윗쪽에 위치해 있다. 


노란색으로 칠해진 길은 거주구역 내의 길이다.

하지만 그 길의 형태를 보면, 마을을 가로 지를 수 있는 길이 전혀 없다. 모두가 Cul-de-sac(막다른 길)이거나 Crescent(돌아나오는 길)이다.

차에서 물건을 내리거나 특별한 목적에 의해 진입하는 것이 아니라면, 차량 통행이 없는 길이 된 것이다.


덕분에 보봉에서는 텔레토비같은 아이들이 골목골목을 마음껏 뛰어다닐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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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 내에서 차가 다니지 않기 때문에, 주위를 살피며 걸을 필요가 없고 당연히 신호등이나 넓은 길이 없어 보행친화적이다. 

주차장이 차지하고 있는 공간도 없기 때문에, 모두 푸른 숲과 아이들을 위한 놀이터로 채워졌다.

몇시간정도 잠깐 둘러보았을 뿐이지만, 정말 살고 싶은 마을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병영지의 오래된 나무들을 최대한 남겨둔 덕분에, 마치 숲 속 시골마을처럼 녹음이 가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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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포스팅에서는 수많은 건축가들의 작품을 한 곳에서 만날 수 있는 비트라 캠퍼스로 간다.

자료출처

Wikipedia - Vauban, Freiburg

'프라이부르크 녹색도시' - 한국어판 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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쾰른의 짧은 일정을 서둘러 마무리하고 찾은 다음 도시는 Frankfurt다.

프랑크푸르트는 독일에서 가장 높은 건축물들이 모여있는 도시로, 유럽중앙은행을 비롯해 여러 기업이 밀집해 있다.

그래서인지 국제 항공편이 많고, 괜히 프랑크푸르트라는 이름이 익숙하다. 


관광객으로 프랑크푸르트를 찾는다면, 대부분 Museumsüfer라 불리는 박물관 지구를 갈 것이다.

나 역시 박물관 지구 내에 있는 독일건축박물관과 Stadel Museum 그리고 Richard Meier가 설계한 Museum Angewandte Kunst 등을 보려고 프랑크푸르트를 찾았다.

박물관 지구 외에도 괴테의 생가나 Römerberg 광장 등이 유명하다.


 


중앙역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마인강의 남쪽과 북쭉으로 여러 박물관/미술관이 모여있다.




Günter Behnisch가 설계한 Communication Museum이 눈을 사로 잡는다.

귄터 베니쉬는 뮌헨 올림픽 공원의 마스터 플랜을 한 것으로 유명하다. Frei Otto가 설계한 주경기장으로 잘 알려진 바로 그 뮌헨 올림픽 공원이다.


귄터 베니쉬가 어떤 건축을 했는지는 아직 잘 모르지만, 그에대해 정보를 찾다보니 인터뷰 내용들이 썩 흥미롭다.

좀더 공부를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건축가다. 

베니쉬의 인터뷰를 보고 싶다면 다음을 펼쳐보길 바란다.


인터뷰 보기




독일건축박물관, O.M.Ungers X Ingo Schrader




독일건축박물관. 이곳은 건축가 Oswald Mathias Ungers의 집이기도 했던 건물이다.

웅거스는 독일건축에서 가장 큰 영향을 끼친 건축가로 평가된다. 

19세기에 지어진 이 건물의 전면파사드만 남기고 개조해 자신의 집으로 이용했고, 이후에는 그의 업적을 기리는 건축박물관으로 개관했다.

개관을 한 뒤 5년 간은 포스트모더니즘의 시기와 겹쳐 활발한 전시와 담론이 오고 갔다. 하지만 90년대에 들어 방문자수가 급감하면서 박물관을 폐쇄한다는 소문까지 돌았다. 

웅거스를 기리고 건축박물관을 존치시키는 것에 공감대를 가진 사람들이 힘을 모았고, 지역건축가 Ingo Schrader의 개보수로 재개장 하여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입장료를 내고 나면 이런 스티커를 붙이고 입장한다. 아마 날마다 색깔이 바뀌는 것 같다. 그럼 초록색이 돌아오면 무료??

나중에 가게되는 비트라 뮤지움에서도 이런 스티커가 입장권의 역할을 했다.


입장 문턱을 넘기위해 구입한 표를 보여주고 박물관에 들어가는 것과 달리, 몸에 스티커를 붙이는 것은 무언가를 체험하러 들어간다는 느낌을 줬다.

마치 놀이공원에서 손목에 종이팔찌를 감거나 손등에 도장을 찍는것과 같이 말이다.

형식상 크게 다를 것은 없으나 이런 사소한 것에서부터 사용자경험의 차이가 생긴다.



기획전시 공간에서는, 부산 영화의 전당 설계로도 잘 알려진 Coop Himmelb(l)au의 전시가 이루어지고 있었다. 

프랑크푸르트 도시 개발의 과정을 보여주는 전시가 있었던 걸로 아는데, 그 전시를 볼 수 없어서 다소 아쉬웠다.


독일건축박물관은 상설전시보다는 다양한 기획전시를 선보이며, 일반대중과 전문 건축인 사이의 간극을 좁히기 위한 노력을 한다고 한다.




쿱 힘멜브라우의 여러 작업 중에서도 프랑크푸르트에 위치한 유럽중앙은행의 설계과정이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었다.

프로젝트 하나를 위해서 만든 매스모형의 수가 굉장했다.  조형성에 있어 많은 고민을 한 듯 하다.






아까 스티커 로고가 도트 디자인으로 되어있었듯이, 미술관 내 대부분의 타이포그래피가 도트 디자인으로 되어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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렘 쿨하스가 좋아하는 집 속의 집 개념이다. 약간 유치한 듯 하지만 상징성을 주려 한 것 같다. 

수직적 공간연속성을 느낄 수 있게 한다. 단면적으로 조금 더 재밌는 공간이 있었다면 하는 아쉬움이 있다.



상설전시는 독일건축에만 제한되지 않고, From primordial hut to skyscraper라는 주제로 원시주거부터 시대별로 주목할 만한 건축을 모형으로 보여준다.



19세기 런던으로 몰려든 노동자들이 살던 열악한 주거환경 모습이다. 그림으로 유명한 장면인데 입체적 모형을 만들었다.




디지털로 아카이빙 된 정보도 컴퓨터를 통해 쉽게 접근할 수 있다.


물리적인 아카이브 기능은 조금 떨어진 곳에 따로 건물이 있다고 한다. 독일 건축에만 한정되지 않고, 2만여권의 책을 소유하고 있다. 그 외에도 18만 여건도면과 스케치, 600개의 모형, 사진, 가구 등을 수장하고 있다고 한다.

그외에도 자료 수집과 연구 그리고 다양한 세미나와 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으며 연간지 출판과 건축상 수여도 하고 있다. 

독일건축박물관은 단순히 건축 관련 전시를 주최할 뿐 아니라, 건축문화 발전을 위해 다양한 면에서 힘을 쓰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건축박물관에서 중요한 볼거리 중 또 하나가 바로 마인강 넘어로 보이는 프랑크푸르트의 스카이라인이 아닐까 싶다.




동선 상의 마지막에 기획전시실이 하나 더 있었다. Iwan Baan이라는 사진작가가 52주간 52개 도시에 머물려 찍은 사진이 전시되고 있었다.

한국은 얄밉게 피해다녔더라.. 작가 개인적으로 한국에 대한 매력을 느끼지 못했나보다. 분발하자. 때로 여행객은 단 한 장의 사진때문에 그 도시에 이끌리기도 한다.




Museum Angewandte Kunst, Richard Meier




건축학과에 입학하면 가장 먼저 배우는 것이 근대건축의 4대거장이다.

르 꼬르뷔제, 프랭크 라이트, 미스 반데 로에, 그로피우스.


그리고 나 스스로 깊은 관심을 가지게 된 첫 건축가는 리차드 마이어 였다.

작업실 스터디에서 모두가 소규모 주택을 선택할 때, 나는 겁도 없이 리차드 마이어의 바르셀로나 현대미술관에 빠져들었다.

그리고 방학 내내 작업실에서 숙식하며 모형을 완성했던 적이 있다. 건축에 대한 열정이 불타올랐던 첫 순간 이었다.


지금은 그때만큼 리차드 마이어를 좋아하진 않지만, 여전히 그의 작품은 첫사랑과 같은 애틋함이 있다.




미술관 앞의 공원이 참 좋았다. 볕이 잘 들었고, 공원 여기저기서 사람들이 여유를 즐기고 있었다.



크게 자란 나무들 때문에 건축물 전체적인 모습이 한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하지만 그 덕분에, 자칫 압도적일 수 있는 거대한 백색 건축이 한결 부드럽게 느껴졌다.





철저한 정사각형의 그리드 상에서 만들어지는 입면과 평면 그리고 기하학적 곡선의 첨가에 백색 마감.

그의 건축은 누가 알려주지 않아도 확실히 알아볼 수 있다. 


내가 찾았을때는 이미 미술관 폐장시간이 지난 뒤였고, 나의 일정 또한 시간이 넉넉치 않았다.

확실히 이번 여행은 많은 건축물을 보려다 보니, 일정이 다소 빡빡했다.


하나의 큰 덩어리가 아닌 3개로 분절 된 볼륨과 그 사이에서 만들어지는 매개공간이 흥미로웠다.


이 프로젝트는 그의 프로젝트 중에서도 비교적 주변 맥락에 대한 많은 고민이 많은 편이다.

대상지 내에 19세기 빌라를 존치하는 것이 중요했고, 마인강변에 있다는 점과 공원 내에서의 경관 또한 무시하지 않았다.

기본적으로 평면은 두 개의 그리드 위에서 이루어졌다.

빌라의 배치와 평행한 그리드를 만들었고, 다른 하나는 그것을 마인 강이 만든 자연적인 선에 평행하도록 비틀었다. 


여기에 그치지 않고 빌라의 입면을 분석 만들어진 정사각형 그리드를 자신의 건물 적용시켰다.



공원 내의 통행로를 대상지 내에 관통 시킴으로써 개방성과 공공성을 가지게도 했다.


이로써 두개의 그리드 시스템 위에 사선으로 관통하는 두개의 통행로가 더해져, 상당히 복잡한 선들을 가지게 되었다.

보통 이렇게 여러 선을 따르면, 그것을 정리해서 건축화 시키는데에 굉장히 애를 먹는다. 하지만 이것이 바로 마이어의 강점이다.








날씨가 아주 맑았고, 좋은 건축을 많이 본 덕분에 짧은 시간이나마 좋은 기억으로 남은 도시가 되었다.

슈타델뮤지움이나 뢰머광장도 보지못했고, 독일에서 가장 높은 건물로 노만 포스터가 설계한 Commerzbank본사 건물도 놓쳤다.


프랑크푸르트를 찾기 위한 핑계거리를 남겨놓았다고 위로한 채,

Freiburg와 Vitra Campus를 향하는 기차에 몸을 실었다.



※참고문헌 - 독일 건축 박물관, 백경무, 대한건축학회지 2003년 8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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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셀도르프의 친구들을 뒤로 한 채, 쾰른으로 이동을 했다.

뒤셀도르프는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주의 주도였지만, 쾰른은 주에서 가장 큰 도시이고 프로이센 시절에는 베를린 다음의 도시였다.


또, 세계문화유산으로도 등재 된 쾰른의 대성당을 빼놓고는 독일의 건축에 대해 말할 수 없을 것이다.



Cologne Cathedr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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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유명한 쾰른 대성당. 쾰른 중앙역에서 나오면 바로 왼편에 있다.

수많은 관광객이 대성당을 보기위해 쾰른을 찾을텐데, 역 바로 앞에 떡하고 있으니 사람들이 쾰른이라는 도시에 대해 좀더 느낄 수 있는 기회가 없을 듯 하다.


도시의 중앙역과 많은 관광객이 찾는 건축물이 함께 있다보니 성당 주변은 과도한 교통량으로 몸살을 앓았다.

중앙역이 있는 성당 북쪽은 로마시대 성벽이 있었던 탓에 다른 곳들 보다 지면이 매우 낮아서 성당 주변 상황은 문제가 심각했다고 한다.

낡은 건물과 호텔 일부를 철거하여 지금과 같은 광장을 조성하고 서측 정면 부의 지대를 높여 아래를 주차장으로 활용하는 방안이 나오면서 어느정도 해결이 되었지만, 여전히 문제들을 안고 있다. 


독일에서 가장 유명한 건축물의 바로 뒤로 대규모의 중앙역이 들어서게 된데에는, 프로이센 왕족들이 쾰른을 방문할때 역에서 내리자마자 대성당을 보기 위함이었다. 

수백년 간 미완성인 채로 방치되었던 성당의 건설 비용 대부분을 왕가에서 부담했기 때문에 이것을 반대할 사람도, 반대할 이유도 별로 없었으리라. 

쾰른 대성당은 결과적으로 1880년에 완공되었다. 1248년에 건축을 시작해서 600년이 넘게 걸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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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유명한 고딕건축물이자 한때 세계에서 가장 높았던 건축물[각주:1]답게, 어마어마한 위용을 자랑한다.


원래는 회백색이었으나 2차대전때 직접적인 폭격은 피했지만, 소이탄 폭격으로 화재가 난 주변의 재를 고스란히 뒤집어썼다.

현재는 산성비 부식과 매연으로 인해 검게 변해버렸다. 

색이 되지 않았더라면, 대리석으로 치장된 밀라노 대성당 만큼은 아니겠지만 밝게 빛나는 쾰른 대성당을 볼 수 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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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번 고딕건축 내부에 들어올때마다, 조명이 전혀 없는 상태는 어떤 느낌일지 궁금하다.

중세시대 였다면, 인공조명이라고는 촛불이나 등 밖에 없었을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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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 백년간 공사가 중단되던 시기에는 성당이 완공되면 세상이 멸망한다는 말이 있을 정도였다.

600년을 한 자리에서 건설과 방치를 반복하던 건물을 결국은 완공해 내었다. 이것은 한 사람의 왕이 해 낸 일도, 하나의 제국이 이루어 낸 일도 아니다. 

이 거대한 건축을 계획한 것은 물론, 언젠가는 완공 시키겠다는 신념 그리고 그 오랜기간 동안 방치된 폐허를 그냥 없애버리지 않은 그들이 참으로 대단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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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딕건축은 조각과 건축의 극단적인 특징을 모두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흔히 조각과 건축의 차이는 사람을 위한 내부공간을 가지느냐 아니냐에 있다고 말한다. 하지만 이는 건축의 내부적 공간 형성에만 초점을 맞춘 것으로, 건축물이 컨텍스트에 영향을 받을 수 밖에 없으며 도시와 맺는 관계의 중요성을 간과하기 쉬운 생각이다.

중세의 교회마저도 단순히 내부 공간의 수직성만이 중요하진 않았다. 종교 건축은 그 마을 구조에서 중심이 되는 역할을 했다.

교회를 주변으로 도시가 가장 활발하게 움직였고, 교회 앞에서 장이 열리는 전통이 아직 남은 도시들도 있다.


예술과 건축이 경계없이 넘나들던 시대의 사람들에게 조각과 건축에 대한 질문을 하면 어떤 대답을 들려줄지 궁금하다.

어쩌면 근대 이후의 우리는 무언가를 정의할 때, 다른 것과의 차이를 말하는 버릇이 생겨버린 건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그것이 극으로 달릴 때, 편을 가르게 되고 사회는 분열된다. 

모든 것을 이분법적으로 가르는 것은 경계해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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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일생동안, 그것을 즐기든 그렇지 않든 여행을 한다. 인생은 여행과 같다고 말하기도 한다.

사람들은 잘 인지하지 못하지만, 여행객들이 도시마다 보러다니는 것의 대부분은 건축이다.

건축은 그 도시와 오랜시간 함께해 온 가장 큰 흔적이자 지금 도시가 살아가고 있는 모습을 가장 쉽게 보여주는 지표이기 때문이다.


수많은 청년들이 각종 미디어의 바람에 자극을 받아 유럽여행을 떠나고, 유럽의 도시들을 보고 돌아가는 비행기에서 한탄을 하곤 한다. 

왜 우리나라는 이런 곳이 없을까.


그것은 우리가 자꾸만 지나온 흔적을 지우려하고, 우리 그대로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을 부끄럽게 여기기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비단 정치인 한 사람의 문제도, 재벌과 친일파 때문만도 아니다.


있는 그대로 두는 것은 흔적이 되고, 흔적은 역사가 된다. 

오래되고 낡았다 생각하는 것에서, 그것이 우리의 삶이자 가치임을 볼 수 있어야 한다.

단순히 관광객을 모으기 위함만은 아니다. 그것이 우리가 역사를 기억하는 방법이며, 정체성을 잃지않고 미래를 준비할 수 있는 길이다.


아직은 우리에게도 가치있고 재미있는 곳들이 많이 남아있다고 생각한다.

이제라도 그것을 알아보고, 잘 가꾸어 가는 노력이 필요하다.




Kolumba Museum, Peter Zum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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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만나는 피터 줌토의 건물이다.

쾰른 대성당을 지나, 어느 대도시에서나 만나는 브랜드로 가득한 쇼핑거리를 통과하고 나면 콜룸바 뮤지움이 있다. 


쾰른 외곽의 벌판 한 가운데에는 줌토스러운 종교건축이 하나 있다. 사실 그 건물을 보러가고 싶었으나...


Bruder-klaus-kapelle


© Samuel Ludwig © Samuel Ludwig

교통편이 아주 열악해서 하루종일은 걸릴 것 같아 포기했다. 다음에 쾰른을 찾을때는 꼭 가볼테다.


콜룸바는 내가 모르던 건물인데, 0Fany형이 말해주지 않았다면 놓쳤으리라.

왜 여태 이 건물을 몰랐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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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룸바 뮤지엄은 St. Columba Church가 있던 자리다. 

2차 세계대전으로 폐허가 된 곳을 Gottfried Böhm고트프리드 뵘에 의해 Madonna of the Ruins폐허의 마돈나 라는 애칭으로 불리는 예배당이 지어졌다.

그리고 2005년, 공모에서 당선 된 줌토에 의해 지금의 미술관이 지어졌다. 

폐허가 된 고딕성당과 1950년의 예배당, 현대의 미술관이 하나의 건물이 된 것이다.



이 사진은 뵘의 예배당이 지어지고 중세성당의 발굴이 이루어진 후인, 1982년에 찍힌 사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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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장소에서 이렇게 시간의 차이를 두고 이루어진 건축행위가 현재까지 이어지며 하나의 건축이 되었다는것이 정말 놀랍다.


예전 모습과 이렇게 나란히 두고보니, 쾰른 대성당이 보이지 않게 되었다는 건 좀 아쉽다.

건물 안으로 들어가면 쾰른 대성당이 보일테니 그럼 들어가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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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문은 아니지만, 미술관을 이용하지 않을 시민들도 언제든 성당의 유적지를 볼 수 있도록 따로 문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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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여태 내가 이 건물을 몰랐을까. 일부를 보았을 뿐 인데 심장이 뛰기 시작했고 얼른 내부로 들어가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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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제된 재료의 사용으로, 내부에서도 깔끔하고 고급스러운 느낌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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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이 바로 고딕, 1950년 그리고 현재가 공존하고 있는 곳이다.

콜룸바 뮤지엄을 위해 특별 제작한 회색벽돌이 폐허가 된 교회의 벽과 빈틈없이 맞물려 있고, 그 위쪽에는 촘촘한 구멍들을 만들어두었다.

채광과 환기, 습도유지가 이루어짐과 동시에 외부에서 나는 도시의 소리들이 침투해온다.


세월의 흔적과 전쟁의 참혹함을 볼 수 있는 고딕 교회의 폐허는 경외감이 들게 하고 은은한 빛은 신비감이 들게 하지만, 그와 동시에 도시의 소리가 들려오는 것은 우리가 현재에 있음을 깨닳게한다.

역사는 과거에 머물러있는 것이 아님을, 연속되고 있음을 인지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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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 0Fany형을 건덕후라고 부르는 사람이 몇명 있다. 나는 건축을 좋아하긴 하지만 그렇게 덕질을 하는 사람은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이 건물을 보면서는 계속 하악하악 댈 수 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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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룸바 뮤지엄에서는 미술품에 그 어떤 설명이나 작가의 이름이 적힌 패널을 찾을 수 없다.

하지만 보자마자 이 작품은 리차드 세라의 작품이라는 느낌이 확실히 들었다.

나중에 확인해 보니, 건축공모를 시작하기 전에 유적의 재탄생을 위한 일종의 선언으로써 세라의 작품을 이 곳에 설치 했다고 한다.


세월의 흔적이 그대로 드러나는 붉은 벽돌과 붉은강철 그리고 회색벽돌의 조화가 자연스럽고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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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부마감으로 쓰인 벽돌은 구조적으로 버틸 수 있는 한, 최대로 가늘고 긴 크기로 특별히 만들어졌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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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으로 보이는 것이 뵘이 설계한 폐허의 마돈나-예배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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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1층의 교회유적을 둘러본 뒤, 상부층에서는 전시공간이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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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이상 말이 필요한가?



계단실은 폭이 좁고 깔끔한 마감을 하고 있다. 수직으로 이동하는 전시공간까지 정적인 분위기를 유지할 수 있도록 했다.

다만, 일반적으로 이용하는 수직동선이 이 계단 뿐이라서 사용자가 서로 엇갈려 위아래로 이동하기에는 불편하다.

Metric handbook에 나오는 수치에따라 일반적 설계로는 절대 만들지 않을 계단이다. 


관람객들이 시끌벅적 수다를 떨면서 계단을 오르내리거나, 초등학생들이 계단에 앉아 도시락을 까먹는 행위 따위는 내 건물에서 만들지 않겠다는 건축가의 확고한 의지가 엿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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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밖으로 쾰른 대성당이 보인다. 1982년의 사진에서의 그 모습 그대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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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비된 책을 읽을 수 있도록 만들어진 공간인데, 이 곳을 꾸미기 위한 나무, 가죽 등의 모든 재료 또한 줌토가 일일이 정한 좋은 품질의 것들 이라고 한다.

갑자기 진한 색감의 고급스러운 공간으로 바뀌어서 그랬는지, 편안함보다는 부담스럽게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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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룸바 뮤지움의 총 16개의 크기, 비율, 의 유입 정도 등이 다른 전시 공간을 가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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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개로 구획된 전시공간은, 각 전시품의 성격이나 크기에 맞추어 수용 할 수 있다.


현대미술관은 보통, 전시 공간의 유연성을 위해 유니버셜 스페이스를 만드는데에 중점을 두는 편이다.

하지만 줌토그런 공간을 만들 수 있었음에도, 볼륨을 조절하여 크기가 다른 전시실들을 만들고 공간을 구획했다. 

공간의 깊이감과 위계, 다양성이 만들어졌다. 

정확한 의도는 알 수 없지만, 콜룸바 뮤지움이 일반 공공미술관 처럼 많은 전시물과 잦은 특별전시가 이루어지는 미술관이 아니기에, 좀더 완성도 높은 전시공간을 위함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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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에 이어질 곳은,

독일건축박물관이 있는 프랑크푸르트와 친환경 도시 프라이부르크다.





  1. 완공 된 1880년 부터 워싱턴기념비가 세워진 1884년 까지 가장 높은 건축물이었다고.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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x Te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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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의 대표적 공업지대 Ruhr의 Essen시에는 Zollverein이라는 석탄공장이 있었다.

라인강의 기적을 일구는데 큰 몫을 했고, 독일에서 가장 크고 오래된 탄광이었다. 하지만 석탄이 고갈되면서 1986년에 문을 닫고 버려진 땅이 되었다. 에센의 시민들은 일자리를 잃었고, 도시는 생기를 잃어갔다.


10여 년간 일반인이 접근 할 수 없는 채 방치되었고, 시민들도 이 흉물이 사라지길 바랬다. 그 바람대로 지역개발업자가 석탄공장을 모두 밀어버리고 새로운 개발을 하려고 움직였다. 

그러던 중 한 예술가가 이 탄광의 한 켠에서 전시회를 열었고, 산업시대의 유산으로써 이 공장의 가치를 눈 여겨본 사람들은 보존 운동을 시작한다.

이것을 알게 된 주 정부 역시 가장 크고 아름다운 탄광으로 유명했던 이 곳의 가치를 인정했고, 개발업자로부터 땅을 모두 사들인 후 막대한 자금을 쏟아부어 문화공간으로써의 재탄생 계획한다.


이러한 시민과 정부의 노력으로, 졸페라인 석탄공장은 특색있는 관광지로 떠올랐고, 공업도시였던 에센은 2010년에 유럽의 문화수도로 지정되었다.

깊은 갱도에서부터 석탄을 끌어올리던 거대한 권양탑은 졸페라인의 가장 큰 상징물임과 동시에 루르의 에펠탑으로도 불린다.


런던의 테이트 모던은, 빨간 전화박스를 디자인 한것으로도 유명한 길버트 스콧(Giles Gilbert Scott)에 의해 기능적이기만 한 화력발전소가 아닌, 건축적 아름다움을 가진 건축이었기에 산업시대의 흔적을 간직한 채 새로운 기능이 부여 될 수 있었다.


졸페라인 또한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석탄공장으로 불려질 수 있었던 것은 프리츠 슈프(Pritz Schupp)와 마틴 크레머(Martin Kremmer) 두 독일 건축가의 노력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생산시설의 환경을 고려해 마스터플랜을 짰고, 랜드마크가 된 권양탑을 디자인하기도 했다. 


이후 졸페라인 재생프로젝트에서 Ruhr Museum은 렘 쿨하스의 OMA, Reddot Design Museum은 노만 포스터, Folkwang Design School은 SANAA의 손을 거쳐 재탄생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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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센에서 졸페라인까지는 에센중앙역 지하에서 출발하는 트램을 타고 갈 수 있다.




Ruhr Museum - Rem Koolhaa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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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멀리 주황색 에스컬레이터가 Ruhr Museum으로 올라가는 입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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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uhr Museum에는 선사시대부터 시작되는 루르지역의 역사와 유적을 전시하고 있고, 석탄공장의 노동자들이 사용하던 물품들부터 시작해서 나치에 의해 강제동원 된 피해자들에 대한 기록까지 자세하고 방대한 자료가 있다고 한다. 

입장료가 있고, 석탄공장을 모두 둘러보기에도 나에게는 시간이 부족해서 들어가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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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물관에 들어가진 않아도, 다양한 기계설비들이 건물 내에 남아있는 모습은 새로운 공간체험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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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한 표지판이 없었지만, 나는 혼날 각오를 하고 박물관 옆의 비상계단을 타고 올라갔다. 

주로 투어프로그램을 신청한 사람들이 투어를 하면서 옥상을 올라가는 듯 했다. 가이드없이 건물 내부로 들어가는 것은 제지를 당했다.

표지판은 없지만, 옥상을 올라가는 것은 막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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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탄을 옮기던 컨베이어벨트가 지나던 통로는 관람객의 전시시설 내의 이동을 위한 동선이나 산책로로 사용된다.

거대한 구조체의 비일상적인 모습은 상상력을 자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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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움 건물에서 나와, 다른 곳으로 이동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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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lle 12(12번 홀)에는 예술가들의 작업장 겸 전시장과 구내식당 등이 있다.

이 식당에서 먹은 것이 독일에서 먹은 첫 소시지였다. 맥주와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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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게 세 구역으로 나뉘어 있고, 두개의 시내버스 정류장이 있을 정도로 굉장히 넓은 면적이다. 구석구석을 모두 둘러보려면 하루종일이 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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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탄을 옮기던 선로의 흔적도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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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방이라도 변신 할 것 같은, 트랜스포머의 디셉티콘처럼 생겼다. 어떻게 작동하는 걸까 한참을 쳐다봤다. 그 어떤 놀이기구보다도 역동적인 형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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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곳은 코크스 가공 공장이다. 코크스를 제련할 때는 냉각수가 필요한데, 이 냉각수를 보관하고 식히던 곳을 스쿠버다이빙과 아이스링크로 바꾼 기발한 아이디어가 돋보이는 곳이다.

냉각수 보관 탱크였던 곳에서 스쿠버다이빙을 하는 모습은 내가 졸페라인을 처음 알게 된 다큐멘터리에서 가장 인상적인 장면이기도 했다.

여름에만 운영이 되고, 지금은 일반 방문객은 들어갈 수 없어서 아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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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가 바로 냉각수를 식히던 곳이자 겨울이 되면 아이스링크장으로 쓰이는 곳이다. 

Picturesque, Cinemascope같은 단어가 떠오르는, 영화같은 장면이 펼쳐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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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사람들이 이곳에서 감탄을 금치 못했다.

SANAA의 건축을 먼저 보고 온 듯한 한 무리의 관광객들은 이 장면을 극찬하면서, 'SANAA라는 건축가가 만들었다는 그 건물은 도대체 뭐가 대단하다는 거냐'라고 반문하며, 폐허가 되었던 산업유산을 추켜세웠다. 수많은 건축학도들이 동경하는 SANAA이지만, 그 관광객의 비평을 나도 부정할 수 없었다.


아주 짧은 순간이었지만, 단 두명의 남녀만이 이 곳 벤치에 앉아있는 순간을 포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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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디 앨런의 로맨스 영화 배경으로도 어울릴법한 곳이다.

녹쓴 철과 기름 냄새가 났지만, 아직 영화에서 후각을 전달하는 기술이 상용화 되진 않았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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템즈강변의 런던아이 못지않게 멋진 풍경이다. 잡초사이에서 핀 꽃들 마저도 깔맞춤이 되어있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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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어 프로그램 티켓을 사면, 저 멀리 있는 사람들 처럼 내부도 가이드와 함께 들어갈 수 있는 듯 하다.

저렴하진 않았던 것 같은데, 그럼에도 다음번에는 꼭 투어에 합류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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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스토랑이 있어서, 넓은 부지를 돌아다니며 배가 고프고 목이 말랐을 관광객들이 휴식을 취할 수도 있다.

코크스 가공 공장의 위용에 정신이 팔려 레스토랑은 사진을 남기지도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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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탄을 날랐을 기관차다. 단단하고도 기능적이며 센스있는, 독일스러운 디자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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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 구역을 잇는 선로가 있던 곳은 녹지띠가 함께 이어지면서, 녹쓴 철과 낡은 건물의 칙칙함 속에서 휴식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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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다른 권양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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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NAA의 Design Schoo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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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NAA의 작품을 보러가는 길에 발견했다. 처음엔 누군가의 센스있는 낙서라고 생각했는데, 의도된 표지석 같기도 하고 예술작업 같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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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육면체에 가까운 볼륨과 빵빵이창은 이탈리아 고전건축을 떠오르게 한다. 하지만 불규칙하게 뒤섞인 듯 하면서도 정돈된 묘미. 그게 바로 SANAA 건축의 매력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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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부도 깔끔하고 간결하다.

건물내부는 이게 뭔가 싶을 정도로 텅 비어 보인다. 평면을 보면 건축가의 개념을 이해 할 수 있다.


먼저 1층 평면을 얼핏보면, 코어와 회의실이 대공간속에 덩그러니 놓여진 것 같다.

조금 더 관심을 가지고 보면, 출입구를 통해 건물 내부로 들어와서 상부층으로 올라가는 수직 동선까지의 빈 공간이 현관의 성격을 갖는다. 도면에서 잘 보이지 않지만 내부에서 촬영한 두번째 사진을 보면 슬라이딩도어가 달려 있음을 알 수 있다. 1층에서 전시나 행사가 있을때 공간을 구획할 수 있겠다. 이렇듯 내부 공간은 건물의 현관 및 이벤트 공간으로써의 역할에 유연성을 가지고 있다. 실제로 내가 방문했을때도 행사를 준비하고 있었다.

다음으로 가장 오른쪽의 평면을 보면, 이 건물이 정사각형의 모듈로 짜여진 것이 보인다. 

가운데의 두 평면에서는 모듈 속에 놓여진 코어가 자연스럽게 공간을 구획하고, 각 층별로 다른 성격의 공간배치를 할 수 있는 유연성을 가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무작위와 체계, 그 사이 접점에서 명쾌한 공간을 만드는 것이 SANAA의 건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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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ddot Design Museum - Norman Fos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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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드닷 디자인 어워드로 유명한 레드닷 디자인 뮤지엄이다. 이 곳은 원래 보일러탱크가 있던 건물로, 노만 포스터에 의해 리노베이션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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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관을 지나 내부로 들어가면 바로 기념품가게가 나온다. 티켓부스를 겸하고 있긴 하지만, 너무 산만하고 자연스러운 동선에 방해가 된다. 

뱅크시가 제작한 '선물가게를 지나야 출구'라는 영화가 있다. 예술과 자본주의의 관계를 비꼰 영화이다. 전시시설에서 기념품을 통해 수입을 얻는 것을 무조건 욕 할순 없겠지만, 이런식은 좀 별로다. 포스터의 홈페이지에서 도면을 찾아보니, 처음부터 계획된 것 같다. 건축주의 요구였을까.


원래는 입장료가 있지만, 내가 갔을때는 다음 전시를 준비하는 중이라 입장료 없이 내부를 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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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건축가가 이 건물 내부에 뭘 바꾼건지 선뜻 잘 드러나지가 않는다. 

구조체와 대부분의 보일러 설비를 남겨두었고, 그 사이로 관객이 이동할 수 있는 동선을 만들었다.

리노베이션 전후를 비교해 보아야지만 무엇을 덜어내고 무엇을 남겼는지 알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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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겨진 공간 속에 디자인 어워드를 받은 제품들이 여기저기 놓여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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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존의 공간감과 기계설비를 유지하면서 전시시설로 탈바꿈 시켰다. 

하이테크적인 표현은 찾기가 어렵고, 노만 포스터의 작업이라고 알지 못하고 본다면 짐작도 못할 작품이었다. 

이미 그 자체로 강한 힘을 가진 건축에 대해 경의를 표하고, 리노베이션 건축가로서 스스로는 모습을 감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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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마파크를 떠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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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마파크라고 하면 우리는 보통 놀이공원을 떠올린다. 하지만 한국민속촌 같은 곳도 테마파크 중 하나다.

졸페라인은 새로운 유형의 테마파크다. 검은 연기를 내뿜던 굴뚝 산업의 대표적 건물이, 굴뚝없는 산업으로서 수많은 관광객을 끌어모은다는 것은 정말 흥미로운 일이다. 

개인적으로는 놀이기구와 수많은 인파로 가득한 놀이공원 보다 설레었다. 비일상적 공간을 경험하고 상상력을 자극하며, 여유를 즐길 수 있는 테마파크 였다.



Landscape Park Nord Duisburg와 Wuppertal도 가보고 싶었지만, 졸페라인을 둘러보는데만도 하루종일이 걸렸다. 게다가 저녁이면 뒤셀도르프에서 만난 친구들과 밤거리를 휘젓고 다니느라 더 바빴다. 하지만 그렇기에 다음에 또 루르지역을 방문할 이유가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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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셀도르프에 도착해서 MJ누나 집에 짐을 내려놓은 뒤, 가장 먼저 갈 곳은 Langen Foundation이었다.

구글맵에서 대중교통 경로검색을 했다. 그런데, 승용차를 타고 가라느니 자꾸 이상한 결과가 나왔다. 

첫 행선지부터 어떻게 가야할지를 알 수 없는 난감한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아무래도 구글맵이 이 지역 버스정보를 가지고 있지 않은 듯 하다. 

구글맵만 믿고 사전에 조사를 철저히 해두지 않은 내 탓이다. 뒤늦게 이 지역에서 사용 할 수 있는 대중교통 앱을 찾아봤다.


독일북서부 지역의 기차와 대중교통은 Rheinbahn라인반(=라인 철도)이라는 회사가 담당하고 있다.

이 회사에서 만든 앱을 이용하면 기차는 물론이고 트램, 버스 등 모든 대중교통 수단의 검색이 가능하다. 라인지역 외에도 독일여행 내내 이 앱을 활용 할 수 있었다. 

구글맵도 독일의 다른 지역에서는 대중교통 정보를 대부분 가지고 있었다. 


구글맵은 목적지까지 거치게 되는 정류장의 이름을 모두 볼 수 있어서 좋았고, Rheinbahn앱은 기차를 몇번 플랫폼에서 타야하는지 나와서 좋았다. (틀릴때도 있으니, 역 내 전광판이나 열차시간 및 플랫폼이 적힌 표를 다시 확인해야 한다.)




랑겐 파운데이션이나 Museum Insel Hombroich를 간다면, Dusseldorf Hbf[각주:1]에서 기차를 타고 Kapellen-Wevelinghoven역에 내리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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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이렇게 아주 횡한. 여기가 기차역이 맞나 싶은 곳에 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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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찻길을 건너면 나오는 마을 버스정류장에서 869혹은 877 버스를 기다렸다가 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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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리면 또 한번, 여긴 어디 나는 누구. 싶은 곳이다.

내리는 사람이 잘 없는, 고속국도 같은 길이라서 버스가 엄청나게 달릴거다. 나는 결국 한 정거장을 지나쳐서 내렸다...

분명히 랑겐파운데이션 가냐고 물어보고 탔고, 버스는 정차벨을 누를세도 없이 쌩 달려버렸고, 이날 날씨는 엄청나게 더웠고.....ㅜㅜ 

뜨겁게 달아오른 아스팔트 길을 한참 걸어야 했다..

랑겐에 그나마 가까운 버스정류장 이름은 Bergerhof다. 전광판에 다음 정류장으로 뜨면 잽싸게 정차벨을 누르자.


우리의 핵심목표는, 정신을 잘 차리고 내가 그 정류장에 잘 내려야 한다는 것을 향해 나아가면 온 우주가 우리를 도와줄 것이라는 그런 마음을 가지셔야 될거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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랑겐 파운데이션으로 가는 길로 접어들었다. 하지만 여전히 겁나 멀다........


저기 저 작은 노란별이 랑겐의 위치다. 보이는 것과 같이 광활한 평야의 한가운데에 있다.... 버스가 지나는 큰 길에서는 약 2km 떨어져 있다.

도대체 왜 이 외딴곳에 미술관을 만든 것인가ㅜㅜ

하아.. 사실 다 이유가 있다ㅜ 잠시후에 설명 하는 걸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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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어도 걸어도.... 라는 일본 영화가 생각난다. 조용하고 잔잔한 분위기 속에서 가족 간에 감정의 골이 툭툭 드러나는 그런 영화 였다.

걸어도 걸어도 라는 제목은 영화에 등장하는 노래의 가사이기도 하고, 아무리 애를 써도 가까워 질 수 없는 서로의 관계에 한계를 의미하기도 한단다.

인적이 없는, 평야 한가운데 한적한 길이었지만 작렬하는 태양은 나를 뇌리쬐었고, 걸어도 걸어도 랑겐 파운데이션과 나는 가까워 질 수 없을 것 같았다....ㅜㅜ


사실 2km면 걷기에 엄청 먼 거리는 아니지만, 뜨거운 햇살 아래를 홀로 걸어가는 것은 꽤나 외롭고 괴로웠다..

그러다 어느새, 뭔가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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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이 잠겨있고 내부에 들어갈 수는 없었지만, 예술가의 작업장 겸 전시장인 듯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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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자인에 힘을 준 건물도 지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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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것들도 불쑥불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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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도착했다.




Langen Foundatuon /  Ando Tada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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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품 수집가 Marianne Langen, Viktor Meerbusch 부부가 안도 다다오에게 의뢰해서 만든 미술관이다. 2004년에 공개되었고, 물 위에 떠 있는 듯한 모습으로 유명하다. 

주로 일본 미술품을 소장하고 있는 미술관이다. 내가 갔을때는 Olafur Eliasson 특별전시가 이루어 지고 있었다. 파리의 루이뷔똥 재단 미술관을 갔을때도 특별전시 중이었는데 묘한 인연이다.

요즘 한참 주목받는 작가라서 그런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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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도가 즐겨쓰는 물, 그리고 침묵의 벽 혹은 길.. 이 작품에서도 볼 수 있다.


이 미술관의 실제 규모에 비해서, 시각적으로 보이는 면적은 훨씬 작게 느껴진다.

콘크리트 박스를 감싼 투명한 유리상자는 그리 무거워 보이지 않아서, 마치 물위에 떠 있는 듯 하고 하지만 수면과 닿는 부분의 디테일은 아쉽다

건물의 많은 면적이 지면 아래에 있으며, 거기에 더해 동선을 유도하는 벽에 의해 대부분이 가려져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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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도의 콘크리트가 강아지 발바닥 같다고 누군가 말한 기억이 났다.

콘크리트가 어떻게 강아지 발바닥처럼 폭신폭신 하겠냐만은, 직접 만져보니 왠지모르게 이해가 되서 웃음이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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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부 곳곳에 올라퍼 엘리아슨의 작품들이 배치되어 있는데, 장소특정적 작품은 아니지만 각 공간마다 큐레이팅을 잘 해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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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오른쪽에 보이는 작품은, 거울 뒤에는 풍선같은 공기막이 있고 공기를 밀어넣고 빼는 기계 소리가 나면서 미세하게 팽창과 수축을 반복한다.

관람객들이 가장 많이 멈춰서서 이게 무엇을 의미할까 고민하던 작품이다. 

거울의 수축과 반복에 의해 미세하게 변하는 주변의 모습과, 그 가운데에 위치한 자신의 모습을 보며 관객의 반응이나 상상력을 불러일으키는 작품이 아닐까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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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게 중요한 기능을 갖고있지 않은 저 계단과 둥근 기둥 그리고 십자프레임의 창이 연출하는 장면이 '내가 안도 다다오다' 라고 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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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이비통 미술관에서 보았던 엘리아슨의 작업들은 관객으로 하여금 착시나 신비로움을 느끼게 하는 작품이 대부분 이었는데, 랑겐에서의 전시는 그의 내면의 고민이나 생각, 실험이 담긴 작품이 주를 이루었다.

루이비통에서 만큼 대중적이고 재미있는 작품을 기대했던 터라 조금 아쉬웠지만, 엘리아슨에 대해 좀 더 알 수 있는 기회였다. 



독일의 화장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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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rren, Damen... 어디가 남자화장실일까....

헬렌..여자이름이다! 다멘? 아무래도 Man, 남자 인것 같다!

자신있게 Damen으로 들어갔고.. 소변기가 없길래 일부 고급진 건물에는 남자화장실에도 소변기가 없기도 하니까 그러려니 했다.

볼일을 보고 나와서, 혹시나싶어 Herren도 문을 열어봤더니... 소변기가 있더라....ㅋㅋㅋㅋㅋ

독일어를 한 글자도 공부 안하고 온것을 가장 크게 후회된 순간 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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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안도 다다오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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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물을 모두 둘러본 느낌으로는, 특별한 감동이 느껴지는 것은 아니었고 그냥 딱 안도가 만든 건물이었다.

그의 작품 중에 좀더 작품성과 감동이 있는 건물도 있지만, 이 작품은 자기복제 중 하나일 뿐으로 느껴졌다. 최근 안도 다다오 작품에서 반복되는 지적이다. 

나중에 소개하게 될 Vitra Campus 내 그의 작품은 이 미술관보다 10여년 앞서 지어졌고, 유럽 내 첫 작품인데 오히려 그 작품이 더 좋았다.  


자기복제라는 비판을 받는다해도, 안도처럼 뚜렷한 자신만의 어휘를 가진 건축가는 많지 않다. 

자기복제라는 말은 그만큼 확실한 자신만의 색깔을 가지고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확고한 신념때문인지 그의 작품에서는 늘 자신감이 느껴진다. 자신들의 로고로 가득한 가방을 아무리 찍어내도 잘 팔리기만 하는 명품 처럼, 확실한 브랜딩이 된 상품인 것이다.  


하지만 안도의 작품이 명품이라고 말할 생각은 없다. 실험과 도전을 멈춘 그가 남들보다 앞선 건축가로써 가져야 할 모범적인 자세도 아니다.

초기에 그가 보여주던 기하학적 형태가 만드는 시적 공간의 아름다움에 대한 이야기를 뒤로 한다면, 이제 그는 잘 팔리는 건축가가 되었을 뿐이다.

잘팔리는 건축가에서 주저 앉아버린. 그가 알바로 시자나 피터 줌터. 혹은 노먼 포스터 이상의 건축가가 될 수 없는 이유다.


이것이 이름난 건축가 안도 다다오의 이면이다.




라케켄 스타치온(Raketenstation)


랑겐 파운데이션은 라케텐 스타치온에 있는 미술관 중 하나이다. 

라케텐 스카치온(=Rocket Station)은 그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NATO북대서양조약기구의 로켓발사기지 였다. 

냉전시대와 2차대전이 끝나고도 이 곳은 긴 시간, 개발 되지 못한 채 버려진 땅이었다. 


그러다 1982년 독일 조각가 Erwin Heerich가 Insel Hombroich Foundation을 만들면서 이 일대에 부활의 꿈틀거림이 시작된다.

Insel Hombroich는 홈브로이히의 섬이라는 뜻으로 넓은 벌판에 가운데에 마치 섬과 같이 마을과 떨어져 있기 때문에 그런 이름을 지은 듯 하다.

인셀 홈브로이히 재단은 인셀 홈브로이히, 라케텐스타치온 홈브로이히 두 곳의 부지를 중심으로 이 일대의 새로운 탄생을 꿈꿨다.



일본의 나오시마 섬이 예술의 섬이라면, 이 곳 인셀 브로이히는 육지에 있는 예술의 섬이다.

그리고 이 곳은 전시 뿐 아니라 예술인들이 생활하며 작업을 이어가는 장소로도 주목받고 있다.

로켓발사기지였던 곳이, 이제는 예술이 태어나고 자라는 둥지가 된 것이다.


사실, 이곳의 존재를 널리 알리고 시에서 더욱 관심을 가지기 시작한데에는 안도의 작품이 한몫을 했다.

이름난 건축가를 영리하게 활용하는 것은 때에 따라 도시에 긍정적 영향을 가져올 수 있다. 

서울시 DDP는 그 흉내를 내려다가 엄청난 사회적 비용을 지불하고서야 많은 것을 깨닫게 했다. 우리 사회가 정말 깨닫기나 한건지 아직 의문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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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케텐 스카치온에는 Alvaro Siza의 작품도 있다. 시자의 작품이 있다는 것은 이 지도를 보고서야 알았다. 지도 가장 윗쪽에 ㄷ자 건물이 그것이다. 

시자의 작품이 여기 있다고는 전혀 듣지도 못했기에, 작품을 보러 가는 길에도 계속 의구심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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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사시설이었다는 걸 추측할 수 있게 하는 위병소가 남아있다. 왠지 으스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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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벙커도 있다. 실제 벙커를 리모델링 한 것인지 일부러 벙커처럼 보이도록 만든 것인지 잘 모르겠다. 콘크리트 상태나 내부를 봤을때는 새로 만든 것 같기도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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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Siza-Pavilion이라는 푯말을 발견했다.

푯말도 으스스하다.. 느낌은 꼭 '귀신의-집'



Siza Pavilion, Raketenstation / Alvaro Siza X Rudolf Finsterwald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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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자가 그의 사무실에서 일했던 독일 건축가 Rudolf Finsterwalder와 함께 협업한 건물로, Siza-Pavilion이라고 부른다.

안도의 랑겐보다 4년 가량 늦은 2008년에 완공되었다.


이 건물을 직접 마주하고도, 정말 시자가 디자인 한 건물이 맞나 싶었다. 벽돌을 쓴 것이나 건물의 외향적 형태에서 그가 자주 쓰는 어휘들이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우리에게는 파주 출판도시의 미메시스 아트 뮤지움이 가장 익숙한 작품인데 그러한 느낌은 더더욱 없다.

계속해서 갸우뚱하며 건물 입구로 들어갔다. 집에와서 보니 건물 입구에서 사진 한장 안찍었다. 긴가민가하며 건물을 기웃거리다가 사진 찍는 것도 잊어버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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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빌리온 안에서는 시자의 작품 모형들이 전시되고 있었고, 도면이나 스케치도 상당한 양이 전시되고 있었다. 거의 아카이빙의 수준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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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부에서 외부를 조망하던 창이, 외부에서는 내부의 시자 작품을 조망하는 액자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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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은 부속 건물은 주거의 기능을 한다고 한다.


런던 V&A 건축 큐레이터인 Kieran Long은 AR에서의 리뷰를 통해 이 작품을 굉장히 높게 평가했다.

Compare it to Tadao Ando’s Hombroich pavilion and you realise that, while the Japanese is a consummate scenographer, Siza, much the greater architect, connects landscape, shelter and typology in his work


Kieran Long, Curator of contemporary architecture at the V&A Museum

한글로 부드러운 의역을 잘 못하겠지만.. 안도가 원근법적 성취를 이루려는 동안에, 시자는 풍경과 쉘터로써의 기능 그리고 그 형태를 하나로 만들었다는 의미로 볼 수 있을 듯 하다. 

전문은 이곳 에서 볼 수 있다. 



여행 후에야 좀더 공부를 하고보니, 시자가 붉은 벽돌을 이용해서 곡선이 없는 건축을 만든 이유가 어빈 헤리히가 실험한 건물들에 대한 존중이 아닐까 싶다.

헤리히는 조각가이지만, 아이소메트릭 드로잉에 대한 연구를 실제 건물 크기로 실험 하기도 했다. 그 건물들이 홈브로이히에 총 15개가 남아있다.

바로 이 건물들의 외부재료가 모두 붉은 벽돌이며, 기하학적 형태와 몇개의 개구부만 가진 단순한 외관이다.  


그럼 헤리히가 라케텐스카치온에 남겨놓은 작품을 한번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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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자의 파빌리온과 연관성이 보이는가.

우선 시자는 붉은 벽돌을 비롯해 최대한 유사한 재료를 이용해 건물을 감쌌고, 헤리히의 건물들 사이에서 특별히 튀지 않는 건물을 만들고자 했다.

사실 나는 큐레이터 롱의 평가 처럼, Siza-pavilion이 그렇게까지 훌륭한 작품인지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헤리히가 만들고자 했던 홈브로이히의 풍경을 상상하며, 자신의 철학이 담긴 건축을 맥락 속에 녹여냈다는 점에서는 마음에 드는 작품이다.



라케텐스타치온의 다양한 건축과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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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전히 남아있는 군사시설-감시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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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aimund Abraham이라는 건축가가 만든 House of Music. 음악의 집이다.

문이 잠겨있어서 내부에 들어갈 수는 없었다. 음악가를 위해 만든 주거 건물이 아닐까싶다.

지붕에 뚤린 삼각형 개구부의 아랫쪽 꼭지점은 정확히 감시탑을 향하고 있다. 모든 요소들이 굉장히 기하학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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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예술가를 위한 집. 헤리히가 대학교에서 순수미술 강의를 할때 제자였던 Oliver Kruse와 일본 건축가 Katsuhito Nishikawa의 작품이다.

간단하고 저렴한 재료로 최소한의 공간을 만든다는 실험성이 있었겠지만, 겉보기에는 그냥 볼품없는 임시 건축물, 일본식 목조건물이다.


하지만 이렇게, 일본과 전혀 관계가 없는 땅에 보란듯이 일본식 가옥이 지어질 수도 있다. 사소한 것이지만, 일본 문화에 대해 서양이 얼마나 동경을 가지고 있으며 일본인들 또한 얼마나 자부심을 가지고 자신들의 것을 자랑스레 내놓는지가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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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가를 위해 지어진 작업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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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에서 한 사람을 위한 집을 만든 일본 건축가의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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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선가, 판테온의 형태를 따와 만든 작품이라는 글을 본 것 같은데... 

개념적인 내용이 좀 더 궁금하다. 내가 갔을때는 동네 자전거 폭주족들이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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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케텐스타치온의 한쪽 출구 앞에 세워진 어빈 헤리히의 작품.



헤리히가 홈브로이히에서 꿈꿨던 것은 무엇일까.

자신만의 예술적 성취? 여러 예술인이 함께 어울려 살 수 있는 커뮤니티? 아니면 단순히 버려진 땅을 살려야 겠다는 책임감 같은 것이었을까.

영어도 부족한 내가 독일어로 된 자료를 헤매고 다니기에는 많은 정보를 찾아내기가 힘들었다.


내가 찾아간 날은 평일이고 햇살이 너무 뜨거운 날이었기에 방문객이 많지않아 그랬는지, 조금은 횡하게 느껴졌다. 

건물 곳곳에서 사람의 흔적은 있었지만 활발한 움직임이 있는 곳은 아니었다.

예술가들이 작업을 하는 곳이기에 꼭 활발해야 할 이유는 없다. 하지만 왠지 모르게 나는 이 곳이 가까운 시일에 미술애호가들과 관광객이 많이 찾을 것 같다는 확신에 가까운 예감이 들었다.


부지 곳곳에 놓여진 건물들을 하나하나 찾으러 다니는 재미는 마치 보물찾기를 하던 어린시절과 같은 기분이 들게했고, 건축과 예술이 어우려지며 만들어내는 이곳만의 특색이 점점더 많은 사람들을 이끌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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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케텐스타치온에서 예상보다 훨씬더 많은 시간을 보낸 바람에 인셀 홈브로이히는 돌아볼 수 없었다. 

여행 마무리쯤에 늘 하는 다짐 - 다음에 또 다시 오는 걸로...!



다음편에서는 복합문화공간으로 변신한 졸페라인 탄광을 소개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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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Archist _Teo 트랙백 0 : 댓글 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