꼬르뷔제 색연필

2015.02.05 09:25 from Teo/Essey

​​​​X Teo



파리에서 마지막날 샀던 꼬르뷔제 색연필을 깎았다.

사용하기 위해서 깎고 나면 원래와 같은 모양도 아닐 것이며 Le Corbusier라고 쓰인 글씨도 깎여 나갈테니까 사진을 남겼다.

깎고 나니까 역시 종전만큼 예쁘지가 않다.
사용하기 위해 다듬은 것 보다, 사용할 수는 없는 새것인 상태가 더 보기에 좋다니...

마치 실제 생활하기엔 불편하다는 거장들의 작품과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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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의 주간지 샤를리 엡도 의 테러로 12명이 사망했다.


어제 대규모 추모시위가 열렸던 Républica 광장에는, 비가 오는 가운데에도 많은 시민들이 찾고 있다.
언론의 자유를 수호하기 위해서 자신의 의견을 소신있게 주장하기도 하고, 광장의 바닥에 펜 하나를 내려놓으며 추모에 동참하기도 한다.

파리에는 차디찬 겨울비가 내리고 있다.
추모 촛불이 빗물에 꺼지고, 자유•평등•박애의 상징인 삼색기는 하나둘 조기로 바뀌고 있지만, 국민 모두가 손을 모아 붙잡은 그들의 펜대는 어떠한 폭력에도 꺾이지 않을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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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속이 있어 Liverpool Street을 들렀다가 영환이형이 먼저 다녀간 Richard Serra의 Fulcrum을 마주쳤다.


아무말 없는 거대한 조각일 뿐인데, 어찌나 반갑던지. 




2014/04/23 - [0Fany/Memory palace] - 130918 런던의 중심에서 리차드 세라를 만나다




리버풀스트릿은 런던의 유명한 고층 빌딩이 밀집한 Bank 일대와 상당히 가깝다.


특히 리버풀스트릿은 튜브 뿐만 아니라 기차역이 함께 있는 곳이라 유동인구가 상당히 많은 곳이다.



리버풀스트릿의 첫 인상은 정말 '별로'였다.


우선, UBS Bank의 사옥으로 추측되는 갈색 건물이 주변 전체를 압도하며 답답한 느낌을 주었다.


건물 주변 곳곳에서 대형 공사가 진행되고 있는 것도 한몫 했다.


파사드 디자인에 눈길이 가서 유심히 살펴보긴 했지만, 이 건물의 육중한 무게감을 상쇄시키기엔 역부족이었다.



리차드 세라의 작품이 서 있는 열린공간은 리버풀스트릿역으로 들어가는 입구 중 한 곳이다.


건물의 입면에 사용된 석재와 조각이 거의 유사한 색깔이어서 마치 건물의 일부인 듯 보이기까지 했다.


탑, 오벨리스크, 기둥Column 등 우리의 신장에 비해 높고 하늘을 가르키는 듯한 구조물을 보면 우리는 약간의 경외감을 갖기 마련이다.


지주, 지렛대를 표방하는 이 작품 Fulcrum 역시 주변 풍경에 신선한 충격을 환기 시키려 한다.




런더너들은 바쁜 업무와 생활때문인지, 길에 앉아 간단하게 점심식사를 해결하는 경우가 많다.


이 광장 역시 많은 직장인들이 계단에 앉아 점심을 해결하고 있었다.


Fulcrum은 사람들의 시선을 모으는 중점이 되는 객체로 작용한다.


© Google Earth


짙은 갈색 건물의 왼편으로 그림자 속에 가려진 구조물이 세라의 Fulcrum이다. 


이 열린공간의 면적자체가 그리 좁은 것은 아니지만, 


육중한 건물 사이에 끼여있고, 거기에 세라의 거대한 조각이 공간을 더욱 답답하게 만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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팍팍한 사무실에서 나와 도심 속 공원에서 햇볕을 맞으며 점심을 즐기는 모습은 너무나 평온하지만, 


건물이 만든 그림자 속에서 거대한 철판을 마주하며 먹는 점심은 식은 샌드위치를 더 차갑게 만들 것 같다.






조각은 건물의 신축과 함께 설치된 듯 하다. 1987년 이면 내가 태어나기도 전 이네.


나의 관점은 '2014년 지금의 나'  것이다. 세라 역시 지금 이 장소에 작품을 놓는다면 또 다른 작품을 만들었을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이 작품이 만들어진 시대를 이해 할 필요가 있다.



우선 공공미술이라는 것은, 뉴딜정책의 일환으로 미국 정부가 실직한 예술가들을 위해 공공장소를 디자인 하도록 한것에서 태동한 개념이다.


이후 공공 미술은 건물을 장식하거나 도시 미관을 조성하는 분야로 발전했다.


하지만 세라는 여기에 완전히 반기를 드는데... 이런 말을 했다. 

“지금 이 나라에서는, 특히 조각의 경우, 건축에 시중을 드는 작업을 만드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 나는 구조가 모호하거나 도시 디자인의 원칙을 만족시키는 그런 조각에는 흥미가 없다. 내가 보기에 그런 조각은 항상 매너리즘의 양상을 띠게 되거나 기존 미학의 현재 상태를 강화할 뿐이었다. [...] 나는 비실용적이고 비기능적인 조각에 관심이 있다.”


세라는 조각을 통해 반환경적 조건을 만들어 장소에 개입함으로써 비판성을 일깨우기 위한 작품을 만든다.


그 대표적인 사례가 Tilted Arc 기울어진 호. 






이 작품은 설치 3년 뒤, 조각 뒷편의 건물을 이용하는 1000여명의 불만이 가득한 탄원서가 제출되었고 결국은 철거된다.


통행을 방해하고 흉물스럽다는 이유에서다. 세라의 의도가 바로 이 작품을 철거시키는 원인이 된 것이다. 


세라의 작품을 거대한 쓰레기라고 말하는 것과 철거를 강행한 점에 대해서는 굉장히 안타깝다.


하지만, 공공 공간 역시 공공의 소유물이라는 점에서 소유자, 이용자가 원치않는 예술은 그 가치를 잃게 되는 것은 피할 수 없는 듯 하다.




이 사건은 공공예술과 대중 간의 소통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일깨우는 중요한 전환점이 되었다.


이 사건이 일어난 80년대 부터는 공공미술은 예술가와 주민이 지역사회의 이슈를 공유하고 벽화나 조형물 등을 함께 디자인하는 등의 새로운 공공미술 영역을 만들어 내기도 한다.


그리고 90년대에 이르러 미국 공공미술의 최대의 후원단체인 국립예술기금(National Endowment of Arts)의 목표는 ‘구체적으로 공동체 참여를 유도하는 작품’을 후원 하는 것이 된다. 종전의 목표는 '우리시대 최고의 작가의 작품에 공공이 접근할 수 있게 하는 것' 이 었다.


그만큼 공공미술에 있어서 대중과의 관계가 중요시 되었다는 의미이다.


  

영국 북쪽의 작은 도시 Gateshead에는 1998년에 세워진 Antony Gormley의 Angel of the North라는 작품이 있다. 


© David Wilson Clarke


쇠퇴한 공업도시에서 성공한 문화도시로 탈바꿈한 게이츠헤드의 출발점에는 곰리의 공공미술이 있었다.


곰리는 천사상의 제작에 반대하는 수많은 시민들을 대상으로 그들에게 돌아갈 혜택을 설명하며 설득했다. 


또한 시에서 열리는 여러 문화행사에 직접 참여하며 시민들의 마음을 돌렸다.


만 아니라, 게이츠헤드에서 생산되는 자재와 폐쇄된 공장을 철거하며 얻은 자재를 이용하고, 실직한 노동자들을 작품 제작에 참여시켰다.


지금 이 천사상은 이곳의 랜드마크이며 모두가 사랑하는 공공미술이다.


이후 게이츠헤드는 첨단공연장, 밀가루 공장에서 현대미술관으로 탈바꿈한 BALTIC Centre, 밀레니엄 브릿지 등이 관광산업을 발전시키고, 삶의 질을 개선하면서 쇠락하던 도시에게 희망을 주고 시민들에게 자부심을 가져다 주었다.


공공미술이 시민과 소통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여주는 극적인 사건이었다.





곰리의 작품이 세라의 작품보다 훌륭하다고 말할 수는 없다.


세라의 시대에는 Tilted Arc와 같은 비판의식을 가진 작품 또한 필요했으며 그는 훌륭한 예술가 다.


그리고 그로 인해 공공예술이란 어떤 것이 되어야 하는지 고민하는 계기가 되었으며, 정부가 주도하는 공공미술을 타파 할 수 있었다.



곰리의 작품은 현대에 가장 각광받는 공공미술이다. 하지만 그의 천사상이 완성된지도 이미 15년이 넘었다.


모든 곳이 게이츠헤드나 런던 같지도 않다.



지금의 공공미술은 더 작고 더 낮은 곳에서 그 가치를 발휘하기 시작하는 듯 하다.




'한 문명이 끝날때 마다 그들이 남긴 것은 예술이다' 라고 말한 Boris Johnson 런던 시장의 말이 기억난다.


그리고 나는 우리 생활에 더욱더 밀접하게 다가올 공공미술을 기다려 본다.





번외.


런던 여기저기에 불현듯 마주칠 수 있는 곰리의 작품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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훨씬 더 많지만, 차차 업데이트 할 예정






자료 출처 


Public Art_공공미술 걸작선 기울어진 호, 그 이후 ①

관람자 우선의 새로운 공공미술 

EBS 다큐프라임 091012 [예술, 일상을 만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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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핍

2014.11.04 23:50 from Teo/Esse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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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실의 계절이 가고,


결핍의 계절이 왔다.



너무 많은 것을 잃었고, 

많은 것이 채워지지 않았다.


행위가 뒤따르는 결핍만이

상실에 의미를 부여한다.

살아갈 가치를 부여한다.



자연이 그렇고

사람이 그렇고

우리 사회가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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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2014.06.28 11:00 from Teo/Esse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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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런던의 히드로공항은 전세계에서도 손에 꼽히게 비행기가 많이 오르내리는 공항이다.


머리위를 오가는 비행기를 보면, '누군가 또 이 도시로 오는 구나'하는 생각이 든다.




2.


새로운 곳에서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고, 그들과 친해지고, 그들과 함께 어울리고..


그러는 사이


함께 어울렸고, 누구보다도 친하게 지냈으며, 오래 만난 사람들과 멀어지기도 한다.









내가 누군가를 소중히 여긴다고 해도


그는 나를 소중히 여기지 않을 수도 있다.



너는 나에게 소중한 사람이라는 것을 표현하지 못하는 나처럼


그 사람도 나에게 그 마음을 표현하지 못했을 수도 있을테다.


그 미묘한 간극이 결국에는 조금씩 멀어진다는게 슬프다.




2014.6.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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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화과

2014.06.19 09:09 from Teo/Essey


어릴적,

외할아버지 집 마당에는

포도, 석류, 무화과 열매가 열렸다.
외사촌동생들이 생기기 전까지
그 알알이 열매는 모두 내 차지였다.

그중에서도 달달한 무화과를 가장 좋아했다.
마트에서는 쉽게 볼 수도 없고, 외할아버지 집에서만 먹을 수 있기에 더욱 그랬다.

외할아버지와 외할머니가,
자식들과 가까운 곳에 살기 위해 아파트로 이사를 하신 이후로 더이상은 달콤한 무화과 맛을 볼 수 없었다.


이 먼 곳 영국에서,
매일 걷는 집앞 골목에 무화과 열매가 떨어진다. 

나를 위해 무화과를 따주시고
명절에는 내가 좋아하는 음식을 따로 빼놓으셨던 외할아버지.


무화과를 보면 늘 외할아버지 생각이 난다.


2014.6.17 런던에 온지 두 되던 날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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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권 최대의 음악 경연 대회인 Eurovision Song Contest 2014 이 5월 10일 코펜하겐에서 열렸다.


유로비전 송 콘테스트는 약 60년의 역사를 가지고 있으며, ABBA가 이 대회의 우승을 통해 데뷔를 한 것으로 유명하다.


올해는 37개 국가가 대회에 출전했다.



그리고 대망의 우승 프로피는 오스트리아 출신의 가수 Conchita Wurst(콘치타 부르스트) 차지했다.



콘치타는 남자이지만, 여자 가수로 활동한다. 이게 말인지 소인지 싶겠지만 사실이다. 

가발을 쓰고 몸에 딱 붙는 옷을 입고 여자가수로 활동하지만, 동시에 수염을 기른 남자이다. 

유럽에서도 보수적인 편에 속하는 오스트리아에서 국가대표로 뽑히기 까지는 많은 눈물과 실력, 노력이 뒷받침 되었을 것이다.

'외모와 성별, 출신 성분은 전혀 중요하지 않으며, 다른사람에게 해가 되지 않는다면 누구나 자기가 살고 싶은 인생을 살 수 있어야 한다’고 이야기 하는 콘치타의 우승.

쇼의 일부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남자의 매력과 여자의 매력을 동시에 가진 콘치타의 우승은 많은 것을 시사한다.

트래스젠더도 아니고, 수염을 기른 여장남자에게 대회 우승 트로피를 쥐어준 유럽인들의 모습은 정말 놀라웠다. 

노래 경연대회에서 노래를 제일 잘 부르는 사람에게 상을 주는 것이 당연하지만, 아마 지금의 우리나라에서는 일어날 수 없는 일이 아닐까.



가까운 미래에는 ‘이분법’이라는 단어가 죽은단어가 될 지도 모를 일이다.






사족1.

콘치타의 출연소식에 벨라루스 일부 국민은 보이콧을 선언 하기도 하고, 벨라루스에 생중계 금지를 촉구 하기도 했다. 

하지만 벨라루스 국영방송은, 유럽방송연맹이 윤리감독을 하고 승인한 것을 자신들이 금지해서는 안된다며 이를 거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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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리 이야기

2014.04.03 19:37 from Teo/Essey

학과 내 동아리 Archiphilia라는 곳에서 활동하고 있다.


우리 동아리는 1983년 영남대학교 건축대학원생들을 주축으로 만들어진 '건축설계연구동아리'다.


당시 열악한 학교시설과 커리큘럼에서의 한계를 느껴, 학교 외부에서 작업공간을 따로 임대하여 자체적인 스터디와 작업을 진행하기 시작했다.



최초의 작업공간은 대구 범어동에 위치했고, 내가 동아리에 가입할 당시는 학교 앞(경산)에 위치해 있었다.


학교와의 접근성때문에 경산으로 옮긴것이였다.


그리고 올해, 다시 범어로 돌아왔다.


학교와는 멀어졌지만, 선배들과의 활발한 교류를 위해서 과감히 범어로 나오게 된것이다.



이런 과감한 결정에는, 선배들의 많은 도움과 격려를 필요로 했다. 


마침 30주년 행사를 성대하게 치루었고 오랫만에 함께 얼굴을 마주하면서, 함께 힘을 모을때라는 것을 공감 했기에 가능 한 일이였다.


학부생의 회비만으로는 대구 시내의 높은 임대료를 감당 할 수가 없었다.



나는 개인적으로, 우리 Archiphilia에 대한 애착을 아주 강하게 가지고 있다.


항상 내가 소속된 단체에 대한 자부심을 가지려하기 때문도 있겠지만, 처음으로 건축에 대한 열정을 펼칠 수 있었던 곳이 우리의 작업실이었고, 그곳에서 선배들로 많은 것을 배웠으며, 몇날몇일 집에 가지않으면서 건축에 대한 열정과 고뇌의 시간들을 보낸 곳이기 때문이다. 

또한 유난히 끈끈한 나의 동기들과 함께 보낸 시간들은 더욱 큰 애착을 만들었다.



특히 작년은 작업실을 직접 운영하였고,

30주년 창립기념식을 준비하며 한참 기수가 높은 선배들과 함께 행사를 준비한 것은 꽤나 값진 경험이였다.


SONY | SLT-A57


행사진행을 해야했기에 정신없이 지나가버렸지만, 너무나 뜻깊고 가슴벅찬 하루였다.


그리고 그날의 단합이 이어져 올해 범어로 작업실을 옮기는 일과 Curriculum을 다듬는 일까지 진행하게 된것이다.



새로운 작업실을 구하기 위해서 정말 많은 곳을 돌아다녔다. 경산과 범어 일대의 상가건물의 시세를 다 꿰고 있을 정도가 되었다.


그리고 마침내, 지하철 수성구청역에서 걸어서 2분거리에 있는 2층 상가로 결정을 했고, 이사를 한지 두달이 되었다.

그간 선배들에게 책장, 55인치 TV, 컴퓨터 등을 후원 받았다.



몇달간, 동기 승훈이와 함께, OB선배의 피드백을 계속해서 받으며 준비한 커리큘럼도 확정짓게 되었다.

학교에서 배우는 것은 무엇인지, 학교 커리큘럼의 부족한 것은 무엇인지 자체적인 판단을 한 뒤 스터디를 하나하나 짜나갔다.

우리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것과 선배들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을 모두 합치다보니 꽤나 많은 스터디 프로그램이 계획되었다.



1년이 넘는 시간동안 정말 많은 일을 했었고, 또 올해를 위해 많은 준비를 했다.

스터디 프로그램을 짜면서, 선후배와 함께 하게 될 이 스터디들이 너무나 기대되었다.



하지만 이제 출국을 2주도 남겨놓지 않은 상황이 되니, 함께 할 수 없다는것이 너무나 아쉽기만 하다.

내가 짊어져야 할 짐까지 승훈이에게 모두 맡기고 가는 것이 미안하기도 하다.


내가 작업실로 돌아오게 될때까지 잘 유지되고, 더욱 발전되어 있기를 간절히 바란다.



2014년 신입생 하드트레이닝을 진행 중인 모습. 이 과정을 통과해야 우리 Archiphilia의 회원이 될 자격을 얻는다.


 아키필리아 블로그:http://archiphilia.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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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차

2014.02.17 20:22 from Teo/Essey

어딘가로 여행을 떠날때, 나는 기차를 가장 선호한다.


기차는 묘한 설레임이 있다. 집을 떠난다는 약간의 불안함, 새로운 여행지에 대한 기대.. 그리고 목적지에 다다를 때까지 기다림의 시간.

나는 그 기다림의 시간이 좋아서 가장 느린, 그리고 또 가장 저렴한 무궁화호를 탄다. 흔들리는 버스와 달리, 기차에서는 책을 볼 수도 있고 글을 쓸수도 있다.

가끔은 목적지로 가기위함이 아니라, 책을 읽고 창밖을 바라보는 순간이 좋아서 기차가 타고 싶어지기도 한다.



SONY | SLT-A57




기차로 여행을 많이 다니다 보니, 많은 추억거리도 생겼다.


어느날 갑자기 부석사를 가봐야겠다는 생각에 아침일찍 기차를 타고 영주를 다녀온 일이 있다. 거리상으로 영주는 대구에서 꽤 멀지만 내 마음 속에서는 늘 한쪽 옆에 두었던 곳이다.


영주역에는 벽화와 포스트잍 등, 그곳을 다녀간 내 또래들의 흔적으로 가득했다. 기차로는 중앙선에서 영동선과 경북선이 갈라지는 위치였기에 내일로 여행객들이  많이 거쳐갔던 덕이다.


부석사는 소백산을 품은 듯 하기도 그 속에 숨은 듯 하기도 했다. 지금의 부석사가 있기까지의 시간의 켜는 가늠할 수가 없었다.  부석사는 차마 그날의 내 가슴에 다 담을 수가 없었다. 아쉬움에 사진을 이리도찍고 저리도 찍어보고, 스케치도 하며 내 마음에 담으려 애썼다.


결국, 해가 저물때가 되어 급히 산사를 내려와 다시 기차역으로 향했다.

시간을 많이 지채한 탓에 대구로 내려오는 마지막 기차 시간이 촉박했다. 도중에 택시를 잡아타고서야 출발시간에 임박해 역에 도착했고, 내 상황을 짐작한 승무원 두분이 무전으로 기차를 붙잡고, 급히 발권을 도와주었다.

감사의 인사는 한마디 말로 전할 뿐이였고, 기차로 급히 달려 겨우 올라탈수 있었다.

기차에 많은 승객이 있는 것은 아니였지만 나로 인해 출발이 지연된것에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비록 폐를 끼쳤지만, 나에게는 기차에 대한 소중한 기억 중 하나다.



NIKON | COOLPIX P5100




그 이후에, 서울과 이곳저곳을 오가며 잠들거나 실수로 도착역을 지나쳤을때, 승무원들의 배려로 돌아오는 열차를 무임으로 타는 일도 종종 있었다. 자랑할 것은 못되지만 기차에 더욱 정이 들게 된 일들이다.




꼭 2명씩 같이 앉게되는 기차의 일반적인 특성상, 옆자리에 어떤 사람이 앉는지에 따라서도 여행의 인상이 많이 달라진다. 

무궁화호에는 왁자지껄한 할머니들이 우르르 타기도 하고, 교통비를 아끼기 위한 학생도 꽤 있다. 늦은 저녁이면 술에 취해 목소리가 한층 커진 아저씨들을 종종 만나기도 한다.


서울과 대구를 오가는데에 4시간쯤 걸리는 무궁화호는 다소 지겨울 수 밖에 없는 여정이다. 무궁화를 자주타는 나는, 책도 보고 풍경도 보고, 잠도 자다보면 금방 도착한다고 느끼기에 그 긴 시간을 즐긴다.

한번은 내 옆자리에 또래의 여학생이 앉은 적이 있다. 서울가는 무궁화호를 거의 타보지 않았던 그 애는 무척이나 고역인듯 했다. 지겨워서 몸을 베베 꼬고 한숨을 푹푹 쉬었다. 지겨워하는 모습이 여간 신경쓰이는 것이아니여서, 말을 걸어 대화를 나눴다. 그해 졸업을 앞 둔 그 친구도, 진로에 대한 고민이 많았다. 서로를 응원하고 위로하며 긴 시간의 열차여행이 끝나가고 있었다.


심리상담을 공부하고 있는 분과 이야기를 나누었던 것도 재미있었고, 부대에서 휴가를 나왔던 나에게 군대 이야기를 예전 군대 이야기를 해주시던 어떤 할아버지에 대한 기억도 난다.




아무래도 기차에 대한 가장 즐거웠던 기억은, 2009년 대학동기들과 내일로 여행을 했던 때 인것 같다. 시골역에서 기차를 기다리며 돌멩이로 공기놀이를하고, 들어오는 열차에 손을 흔들면 기관사 아저씨가 같이 손을 흔들어 주었던, 그리고 열차에서는 마주보고 앉아 서로 다리를 뻗고 이야기를 나누면 모든 것이 즐겁기만 했던 그때의 기억들…



오늘도 플랫폼에 서서 무궁화호 열차를 기다리며, 기차와 함께한 많은 기억들을 떠올려 본다. 혹시 그때 내 옆에 앉았던 사람들이 다시 옆자리에 앉게 되는 것은 아닐까 설레는 마음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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