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학교의 4학년 2학기 건축설계 프로젝트는 '리노베이션' 이다.


교수님께서, 올해에는 대구를 벗어나 경북으로 눈을 돌려보는것이 어떻겠냐는 제안을 하셨고, 그 중에서도 청도의 가능성에 대해 소개를 해주셨다. 그리고 우리는 청도군에 대해 조사를 시작했다.


일부 자료는 원제작자나 출처를 표기했다.


청도의 중심은 읍성이 있던 화양읍이었으나, 지금의 청도읍에 경부선 역사가 생기면서 새로운 중심지로 급속히 이동하게 된다.


먼저 청도역 주변과 청도시장 일대를 둘러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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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도역앞에 비늘판벽으로 마감된 일식 건물이 있다. 꽤나 널널한 땅에 똑같이 생긴 두개의 건물이 있는데, 관사로 쓰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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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도시장 곳곳에서도 다양한 건축언어의 근대건물을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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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도역 뒷편은 일본인들이 많이 거주했다고 하는데, 지금도 많은 일제시대 주택이나 한옥이 남아있다.




유천 (내호리, 유호리 일대)



청도읍내를 더 살펴 보기 전에, 우리는 청도 시내가 아닌 밀양으로 내려가는 길에 위치한 유천이라는 곳에서 놀라운 건물들을 발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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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만 보아도 이 건물의 정체를 어느정도 알 수 있을 것이다. 바로 영화관이다. 건물 곳곳에서 많은 정성이 들어간 건물이었음을 보여주는 흔적이 있다.

마치 2차대전으로 폐허가 된 영국의 교회에서나 볼 법한 내부에 놀라움을 감출 수 없었다. 엄청난 시간의 두께가 몸을 애워싸는 기분이었다. 


처음 경부선이 개설 되었을때, 밀양과 청도읍 사이의 이곳에 유천역이 존재했다. 이제 그 흔적을 찾기도 어렵지만, 현재 유호리 라고 불리는 이 곳은 강줄기가 만나고, 길이 모이는 곳으로써 고려시대부터 물류와 행인이 모이는 곳이었다. 이러한 자연적 특성 덕분에 여러 양조장이 있었다고도 한다.



일제의 전통주 탄압정책으로 많은 양조장이 사라졌고, 유천역은 독립군의 폭파사건 등으로 지금의 상동역으로 위치를 옮기게 되면서 유천은 쇄락하기 시작했다. 

당시 영화관이 있을 정도로 번화가였다는 것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현재는 몇 안되는 세대 수의 노인들만이 거주하고 있다. 


이곳 유천이 고향인 시조시인 이호우의 시에서 옛 유천의 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 



살구꽃 핀 마을은 어디나 고향 같다.


만나는 사람마다 등이라도 치고지고.


뉘 집을 들어서면은 반겨 아니 맞으리.


바람 없는 밤을 꽃 그늘에 달이 오면,


술 익은 초당(草堂)마다 정이 더욱 익으리니,


나그네 저무는 날에도 마음 아니 바빠라.


- 살구꽃 핀 마을, 이호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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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양조장이었던 건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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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호우, 이영도 시인 남매의 생가.




와인터널이 된 성현터널


청도의 유명한 관광지 중 와인터널이 있다.

청도에서 생산된 감으로 와인을 만들어서 그 곳에서 보관과 판매를 하고 있다. 오래된 터널이 주는 독특한 분위기 덕분에 많은 사람들이 찾는 곳으로 유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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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사진이니 지금은 또 다른 모습이 되었을 수도 있을 것 같다.

하지만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지금의 모습이 아닌, 이곳이 어떻게 만들어 졌는가 이다. 


성현터널이 와인터널로써 현대적인 쓰임새를 갖게된 것은, 어쩌면 잘된 일이라고도 할 수 있지만, 이 터널에 대한 역사적 사실을 안내하고 있는 친절한 표지판 하나 존재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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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널의 입구에는, 완공 후 일본군의 한 장군이 썼다는 대천성대 라는 현판을 아직 붙어있다.

일본은 당시 경부선 터널을 뚫으면서 몇몇 터널에는 이렇게 현판을 달았다. 특히 성현터널의 경우 경부선 전체 공사중에서도 가장 험한 공사 중 하나였다. 그 공사를 완공 한 후 일본은 하늘(혹은 천황)을 대신해서 이루어 냈다는 현판을 달아놓은 것이다. 

일본이 터널 하나를 완공한데에 대해서 자축까지 한 이 공사에는, 사실 수많은 조선인을 강제로 노역시키고 총살까지 서슴치 않았던 것으로 악명 높았다. 



성현터널 공사가 이렇게 힘들었던 이유는 일본이 러일전쟁을 앞두고 있었기 때문이다. 

총독부는 '경부철도 속성명령'을 내렸고, 군용물자가 빠른시간에 부산에서 서울로 올라 올 수 있도록 노선을 가능한 직선화 시켰다.

그 과정에서 청도 성현의 험난한 산맥을 가로지르는 약 1.5km의 터널을 계획한 것이다.



http://prologue.blog.naver.com/PostView.nhn?blogId=sj10913&logNo=50099113893&redirect=Dlog&widgetTypeCall=true 

공사장으로 이르는 길이 협소하고 험악하여 공사 재료를 운반하기가 곤란하자, 일본은 5.7km 길이에 8개의 스위치백으로 터널의 남북 양 입구를 오가는 우회가선을 만든다. 기차가 8번이나 후진과 전진을 반복하며 이동하는 임시선로를 설치했다는 의미다. 

이는 당시 일본에서도 전례가 없던 시도로, 이 가선을 설치하는데에만 약 2개월 간 대략 1만~2만명을 투입했다. 성현터널의 완공과 함께 이 가선은 철거되었고, 지금은 그 흔적도 찾기 어렵다.


성현터널은 이정도로 고난도의 공사였고, 많은 희생이 있었던 터널이다. 





고수구길


우리 반은 공통 대상지로 청도 시내와 유천 중 한 곳을 정한 뒤 각자 건물을 선정 하기로 했고, 장고 끝에 일반인들에게 청도 근대건축물의 가능성에 대해 알리고자 하는 목적의 파급효과 등을 고려해 청도읍 고수구길로 결정했다.

고수구길은 청도역 뒷쪽에서 청도군청까지에 이르는 약 1km의 길로, 청도의 근대역사에서 가장 번화했던 길이다.

상업의 중심이었을 뿐만 아니라 일제의 소방서, 경찰서, 우체국, 전매시설 등 관공서가 밀집해 있던 곳이었다.

하지만 원활한 교통을 위해 청화로라는 새로운 대로를 닦았고, 이후부터 청도읍의 중심상업가로는 청화로로 이동하며 고수길은 쇠락하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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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시대 소방대 건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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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시대부터 2000년까지 경찰서가 있었던 부지. 



당시 일본은 수 많은 치안시설을 빠른 시일에 짓기위해서 공통된 몇개의 도면으로 전국에 '찍어'냈다.

국가기록원에서 그 도면과 상세한 정보를 확인 할 수 있다.


국가기록원 - 일제시기 건축도면 건축도면 컬렉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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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덤불을 뒤로 2000년까지 경찰서 건물로 사용했던 3층짜리 콘크리트 건물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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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오른쪽에 보이는 건물은 특별한 이름이 있다.

'무덕관'이다. 무덕관은 일본이 조선인들을 일본 문화에 물들도록 하기 위한 목적 중 하나로 만들어진 건물이다.

무덕전, 무덕관이라는 이름으로 전국 각지에 만들어졌고 일본의 무예, 특히 검도를 가르치는 용도로 쓰였다.

주로 경찰이나 군인이 무덕관의 책임자인 경우가 많았고, 경찰서 부지 내에 있는 경우도 많았다. 그러다보니 무덕전에서 독립운동가들을 붙잡아 취조하거나 고문을 했다는 증언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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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 건물을 이번 학기 대상 건물로 선정했다.

그리고 이 건물에 대해서 조사를 하면 할 수록, 파면 팔수록 놀라운 것들이 쏟아져 나왔다.


자세한 내용은 다음번 포스팅에서...




Nate Kornegay


페이스북을 통해 소개한 적이 있지만, 우리나라에 각 도시별로 산재해 있는 일제시대와 근대 건축물에 아주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는 미국인이 있다.

Nate Kornegay는 건축을 전공하거나 한국인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근대 건축물을 바라보는 식견이 놀랍다.

네이트의 블로그에서 청도에 대해서도 더 많은 자료와 사진을 확인 할 수 있다.


https://colonialkorea.wordpress.com/2015/08/16/cheongd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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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문시장에 대한 설명과 분석을 담은 이전 글


2016/06/23 - 시대를 담은 아파트 - 1. 대구 남문시장 2지구




남문시장에 대한 작업 이후에도, 자료조사를 계속했다.


그러다가 부산 국가기록원에서 남문시장 건립계획서와 계획도면을 소장 중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직접 방문해서 열람한 후 도면의 사본을 챙겨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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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개의 동의 블록형 상가아파트로 계획 된 모습.

3층 이상의 주거부분은 도로에서 상당히 물린 후 중복도형으로 계획했던 점을 볼 수 있다.

실제로는 가운데 3개 동이 조금씩 다른 중정형으로 지어졌다.


공중에서 브릿지를 통해 동이 연결되는 모습이 계획 되었던 모습을 볼 수 있다. 1층 상가의 층고가 굉장히 높고 개방감을 줄 수 있도록 한 모습이 인상적이다. 


모든 상행위는 내부공간에서 이루어지도록 하는 이상을 가지고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난전에 대한 고려나 보차구분에 대한 고려가 좀 더 있었으면 어땠을까 싶다.




우리나라에 지어진 대부분의 상가건축물이 자연채광이나 오픈스페이스를 많이 고려하지 않은 부분이 굉장히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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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로만 듣던 청사진으로 인화된 도면을 실제로 본 것은 처음이었다. 계획도면이라 실제 건설된 것과는 일부 차이가 있음을 확인 할 수 있었다.


청사진 도면을 최신식 대형 복사기를 거쳐 사본으로 만든 후, 가슴에 안고 대구로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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낡고 오래된 것은 없애고 새로운 것으로 대치시켜야 할 것이 아니라, 다듬고 개선해야 할 대상이다.


오랜 역사에 굴곡이 많다할지라도, 그것을 왜곡하거나 새롭게 써서는 안되는 것과 마찬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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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남문시장을 알게 된 때는 2학년, 2009년 이었다.

동기들과 학교 프로젝트의 대상지 선정을 위해 대구 이곳저곳을 답사하던 중 처음 알게 되었다.

이 건물의 매력에 큰 감흥을 받은 나는, 이후로도 종종 찾아가 사진을 찍었다. 


영국에서 귀국한 뒤, 다시한번 들려온 남문시장 재개발 움직임에 너무 속이 상했다. 

이 곳의 가치를 사람들에게 조금이라도 알리기 위해서, 4학년 1학기 친환경건축물 설계 프로젝트로 이 건물을 선정했다.


이번 글에서는 그 동안 작업한 사진과 프로젝트 자료를 담아 남문시장을 소개하고, 나의 생각과 아이디어를 사람들과 함께 공유하고자 한다.





남문2지구 - 시대를 담은 아파트




대구의 지리적, 상업적 중심지인 중구에 위치하고 있고 대구도시철도 3개 노선이 모이는 구역에 위치하고 있다. 

중구에는 현재까지 서문시장을 포함해 약 4개의 전통시장이 남아있다. 이 시장들을 보호하기 위해서, 대형마트가 중구내에 입점하기 위해서는 전통시장과 상호협약을 맺어야 하는 조례가 제정되어 있다. 실제로 한 대형마트가 이 조례 때문에 입점을 포기한 사례가 있다.


남문시장 일대는 대구읍성의 남문 앞에 위치해 있었고, 민간신앙에서 중요한 곳으로 여겨졌던 남산이 있던 곳이다. 지금은 천주교 대구교구청이 위치해 있기도 하다.

뿐만 아니라, 지리적 중심지이다 보니 헌책방골목, 인쇄골목, 자동차골목과 같이 특색을 가진 상가 골목이 모여있다.


이와 동시에 오래전 부터 형성된 주택가가 남아 있다. 낙후된 동네의 이미지가 강하지만, 최근 들어 재개발사업으로 고층주상복합 아파트들이 하나둘 세워지고 있다. 

이육사가 대구에 머물렀을때 지냈던 집의 위치가 이 일대였던 것으로 밝혀지기도 하는 등, 오랜 역사와 많은 이야기가 있는 곳이다.


남문시장 아파트는 1972년 1지구를 시작으로, 1975년에 2지구가 완공되었다. 5지구까지 차례로 주상복합 혹은 상가로써 건축 되었다.


 


남산동일대는 말할 것도 없고, 시장 내에도 1940년대에 지어진 도시형 개량 한옥이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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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에는 (당연히) 길마다 난전이 펼쳐져있다. 그래서 시장이 깊어질 수록 차량의 진입이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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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물의 측면에서 1층 내부 상가로 들어갈 수 있다. 하지만 출입구가 좁고 어두워서 인지성이 떨어진다. 쉽게 발길이 옮겨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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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부로 들어가면, 영업중인 상가는 거의 없다시피 하고, 모두 문을 닫았다. 

채광과 환기가 잘 되지 않으니, 쓰레기가 쌓이고 냄새가 나고 사람들이 기피하는 공간이 되어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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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시장 상가일 수록 화재에 취약한데, 가장 큰 원인은 낡은 전기시설과 복잡한 배선 때문이다.

공공화장실 또한 사용하기가 영 꺼려지는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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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물의 뒷편에는 램프가 있어서, 상부층으로의 접근이 가능하다. 40년전에 지어진 건물 답게 엘리베이터는 설치가 되어있지 않고, 램프 역시 휠체어나 장애인이 사용하기에는 법적 요건보다 가파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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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층 정면에서 지하주차장으로 내려가는 경사로와, 2층 주거부분으로 올라가는 계단이 있다.

다행히 2지구의 지하주차장은 어느정도 활용이 되고 있다. 3지구의 지하주차장은 난전으로 인한 차량 진입이 어렵고 관리가 어려워서 인지 폐쇄되어 있다.

 

활기차지만 번잡한 난전을 뒤로하고 2층으로 올라가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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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단을 한번 꺽어 2층으로 오르면, 언제 그랬냐는 듯 조용하고 이웃끼리 마주 볼 수 있는 네모난 중정이 나온다. 

하늘로 시원하게 뚤린 중정 덕분에 햇살이 쏟아진다. 

이런 도시 한복판에서, 오히려 현대 건축물에서는 체험하기 힘든 시퀀스와 공간감이다.


유명 건축가가 심혈을 기울여 만든 건축물은 아닐지라도, 도시 주택난을 해결하기 위해 다양한 유형의 아파트가 실험되었던 6-70년대의 시대적 배경이 낳은 건축물이다. 

도시의 네모난 블럭 속에서 많은 집을 품으면서, 동시에 좋은 주거환경을 만들기 위한 실험 중 하나가 중정형 아파트다.

특히 이 곳은 대상지가 시장인 만큼, 밖이 번잡하고 시끄럽기 때문에 내부 지향적인 중정을 입주자들이 공유하며 마당으로 사용 할 수 있도록 한 점이 멋지다.



이곳에 시대의 변화와 건축 역사가 담겨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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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 날이면 이 속에 하늘이 담기고 구름이 흘러간다.

밤에는 보름달이 걸리고, 눈이 오면 눈송이가 살포시 내려앉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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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가 넘어가면서 중정에 비치는 그림자의 모습도 달라진다.

중정 너머로는 고층아파트들이 하나둘 솟아나고 있다. 40년 전에는 최첨단 이었던 이 아파트가 이제는 퇴물 취급을 받는다.

새것 만을 최고로 치는 우리는, 작은 집들을 허물고 솟아난 저 아파트들도 언젠가 퇴물 취급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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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아파트에는 오래전부터 살아온 가족들이, 자식들은 분가시키고 두 노부부만 지내는 집이 많다. 

아이들이 많지 않아서, 중정에서 자전거를 타는 아이의 모습이 반갑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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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보는 밤하늘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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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적 위치가 좋은 탓에, 이 곳은 오래전부터 재개발 움직임이 여러번 있었다. 

하지만, 시장 상인들의 반대와 전통시장 보호에 부딪혀 번번히 실패했다.


최근, 조합을 설립하면 아파트 재개발이 훨씬 쉬워지는 법을 이용해서 재개발 하려는 움직임이 다시 시작되었다. 

조합이 설립되면 거주자의 절반만 동의를 해도 재개발 사업이 진행된다.




                   



서두에서 설명 했듯이, 중구에는 남아있는 시장이 많지않다.  

서문시장이나 교동시장 등 특별한 목적을 가지고 찾는 큰 시장이 대부분이고, 실제 인근 거주민들이 장을 보기 위해 찾을 수 있는 시장은 많지 않다.


전통시장 보호를 위한 조례가 있기에 겨우 그 명맥을 유지하고 있는 것이 남문시장이다.

이런 상황에서 남문시장마저 사라져 버리면, 인근 주민들이 장을 보기 위해서 무조건 차를 타고 가야만 한다. 
그렇지 않아도 교통량이 많은 중구에서 차량통행을 더욱 부추긴다면, 교통문제 뿐 아니라 환경적으로도 시대를 역행하게 된다. 



또, 남문시장 자리에 고층 아파트가 들어서게 되면 바로 옆에 위치한

헌책방골목, 자동차골목, 인쇄골목에도 악영향을 미칠 것이다. 요즘 도시들은 모두 특색있는 거리와 관광자원을 개발하는데에 힘을 쏟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문시장의 납작만두와 대구 3대 통닭으로 꼽히는 진주통닭 등을 모두 없애버리고, 특색있는 골목을 고사시키는 행위는 시대적 흐름에 역행하는 것이다.



원본 자료 출처 : 대한민국 아파트 발굴사, 장림종_박진희, 효형출판사



남문시장 2지구 아파트는, 우리나라에 지어진 중정형 아파트 중에서도 중정의 폭이 상당히 넓은 덕에 채광이 유리하고 거주환경도 굉장히 좋은 편이다.



대표적인 중정형 아파트들의 중정 체적. 가장 오른쪽이 남문2지구 아파트.


동대문 아파트는 상대적으로 중정의 폭이 좁고 환경이 그리 좋지않음에도, 문화적 가치를 인정받아서 보존 하기로 결정되었다.



45살 동대문아파트, 예술공간으로 ‘회춘’-한겨레


서울시가 26개 뉴타운 지구 가운데 오래된 아파트를 철거하는 대신 직접 사들여 리모델링하는 사례는 이번이 처음이다. 박진희 연구원은 “국내에 거의 남아 있지 않은 중정형 아파트를 보존함으로써 무조건 철거한 뒤 재개발하는 관행에서 벗어나 도시 재개발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보여주는 사례가 될 것”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동대문 아파트 ⓒ박종오 기자






남문시장을 위한 제안



이런 문화적, 건축적 가치를 가지고 있는 남문2지구 아파트가 재개발로 철거 된다는 것은 너무나 속상한 일이다.

이 건물에 대한 애정으로 한 학기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건물에 대해 더 알고, 사람들에게 가치를 알릴 수 있길 기대했다. 그리고 미래의 가능성도 보여주고 싶었다.


구청과 시청에 다 연락을 해보았지만, 도면을 구할 길이 없어서 실측을 하기로 했다.

친구들의 도움을 받아 하나하나 수치를 기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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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친환경건축이라는 주제에 맞추어, 학기말 작업을 마무리 했다.

친환경, 지속가능성, 탄소발생최소화 등의 목적을 만족시키기 위해서 도시농업 등 다양한 친환경 요소를 도입했다.


여기까지의 작업은 1단계라 하고싶다. 

2013년 개정된 주택법에 따라 기존 아파트의 증축이 가능하므로, 수직 증축이나 공간적인 개선 등 더 많은 것을 풀어낼 수 있으리라 기대한다.





친환경적인 요소에 대한 설명은 생략하고, 이 건물에서 가장 개선이 시급한 부분을 중심으로 나의 제안을 소개하고자 한다. 




1층 상가의 채광과 환기의 어려움으로, 상가 내부가 활용되지 못한 채 어둠과 쓰레기로 가득 찬 것에 대한 공간적 개선이다.

2층의 중정 바닥에서 채광이 가능하도록 뚫어주기만 해도, 전기설비없이 충분한 채광이 가능하다.


상행위가 상대적으로 적은 주말에는 이곳에서 플리마켓(벼룩시장)이나 시장상인, 거주민과 연계한 쿠킹클래스(요리교실) 같은 프로그램을 열어 반월당이나 동성로로 부터 젊은 층을 끌어모을 수도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전통시장 현대화 사업이라는 이름으로 단순히 시장에 아케이드만 설치하는 한계를 넘어, 진정한 시장 현대화가 될 수 있다.

기존에 버려진 공간을 적극 활용해, 전국 어디에도 없는 특색있는 시장을 보여줄 수 있다.


이러한 성공 사례는 유럽에서도 많이 찾아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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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측부터,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 스페인 발렌시아 / 스페인 바르셀로나




겨울철에는 중정으로 인해 에너지 손실이 많은 만큼, 지붕을 덮어주는 아이디어를 더한다면, 조금 더 환경이 개선 될 수 있다.

위 그림의 연출은 아이디어적인 측면이 강하고, 현실적으로는 좀더 고민이 필요하다.


중정 내부에는 거주자만 들어올 수 있도록 동선의 분리가 되어야 한다.




단면의 모습은 이렇다.

우측을 보면 기존의 경사로를 털어내고, 엘리베이터와 비상계단을 신설한 것을 볼 수 있다. 

장애인과 노인에 대한 배려 뿐 아니라, 차후에 수직증축을 위해서도 엘리베이터가 필요하다.



여기까지가 1단계 작업이고, 각 세대의 평면 개선이나 증축 등에 대해서 충분히 더 많은 작업이 이루어 질 수 있다.

남문시장 전체를 개선하고, 전통시장의 새로운 방향을 제시할 수 있는 아이디어 스케치도 해 둔 상태다.







남문시장은 반드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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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에서는 지금, 구시대적 패러다임에서 벗어난 좋은 사례들을 볼 수 있다. 


근대건축물이 즐비한 북성로 일대에 리노베이션 사업을 적극 장려헤서 특색있는 거리로 탈바꿈 중인 [북성로의 재발견 프로젝트]와 대구의 근대적 유산과 이야기를 잘 활용한 [근대로의 여행] 등이 그것 이다.

철거와 재개발이 아닌 보존과 가치 재발견의 좋은 사례가 되었고, 문화컨텐츠의 힘을 보여주고 있다.


남문시장 일대 또한 관광상품으로도 가공할 수 있는 좋은 컨텐츠들을 가지고 있으며, 특히 남문2지구는 공간적으로 잠재적 가치를 가지고 있다.

남문시장을 통해 대구에서 또 한번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할 수 있음을 믿는다.



남문시장은 반드시 지켜져야 하고, 그 가치의 재발견으로 이어져야 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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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문시장 재개발을 적극적으로 주장하시는 분들의 생각도 충분히 공감합니다.


하지만, 건축과 도시를 공부하는 학생으로서 남문시장이 철거되는 것을 가만히 지켜보고 있을 수만은 없습니다.


저는 앞으로도 남문시장의 가치를 알리고, 시민들의 공감을 얻기 위해 노력할 계획입니다.


재개발을 해야 하는 이유가 있는 만큼, 재개발을 막아야 할 이유도 있습니다.


김태호(teo@archist.kr)





*마침 2016리모델링 건축대전 학생부문 공모분야가 '정비 및 개량이 필요한 도심 재래시장, 구역 또는 거리' 입니다. 남문2지구 도면이 필요하신 분은 실측한 자료를 보내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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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라트라바와 알바로 시자


Lisbon Orient Station, Portugal / Santiago Calatrav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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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스본의 Oriente역은 칼라트라바 특유의 구조미를 뽐내며 사람들의 눈길을 끈다.

거대한 고래의 골격을 보는 것 같기도 하고, 기차를 기다리는 플랫폼은 백색의 나무숲 속에 있는 것 같기도 하다. 


잠시 상상을 해보자.

우리는 지금 나무 숲 속에 있다.

자연이 만들어낸 그 모습에 경탄을 하던 중, 갑자기 비가 쏟아진다.

비를 피하기 위해 나무아래로 들어가 나무기둥에 붙는다.

그런데 어찌 이상하게도 머리 위로 빗물이 더 많이 떨어지는 듯 하다. 자꾸만 굵은 빗방울이 떨어진다.


이게 바로 칼라트라바가 만든 나무숲이다.

사람들은 이 철골나무 아래에서도 습관적으로 기둥 옆에 붙어 선다.

어째서인지 지붕을 만들어 놓고도, 기둥 주변으로는 구멍을 내어서 빗물이 떨어진다.

이 구멍이 처음 설계당시부터 계획된 것인지는 모르겠다.

어찌되었건 칼라트라바는 빗물에 대한 대응을 확실히 하지 못했고, 기둥 주변으로 뚫린 4개의 구멍을 통해 플랫폼으로 빗물이 떨어진다. 

비를 피하려고 무심결에 기둥에 바짝 붙을 수록 더 맞게 되는 것이다. 

기둥 아래는 물바다가 된다. 철로 만들어진 구조물에 녹이 생기는 것도 당연한 일이다.

사람들의 행동심리와 쾌적한 건축환경을 위한 모든 요소를 고려하지 못한 탓이다.


구조와 미적 측면에서 훌륭한 모습을 만들었을지는 몰라도 

기능면에서는 꽤나 실망스러운 모습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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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rtugese Pavilion / Alvaro Siz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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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의 바로 뒷쪽는 Avaro Siza의 Portugese Pavilion이 있다.

이 건축물은 마치 두개의 상자 사이에 넓직한 이불을 널어놓은 듯한 형태다.

이불 아래로 넓직하고 높은 공간이 만들어져서 많은 사람들이 모이기 좋아보인다.

수 많은 인파가 모이는 Expo의 파빌리온으로 적절하다고 느껴진다.

이불같은 백색 콘크리트 지붕은 상당히 높이 걸쳐져 있지만, 아래로 살짝 쳐진 곡면덕분에 마치 휴먼스케일에 맞게 만들어진 아늑한 공간에 들어온 듯한 착각이 든다.

이 건축물은 그 구조를 드러내지 않는다. 구조는 표피 뒤에서 역할을 할뿐 사람들은 건축가가 만들고자 했던 그 감성을 느낀다.

칼라트라바의 구조적 솔직함과 시자의 시적인 건축 중 어떤 것이 더 좋고 나쁘다고 말할 수는 없다. 

지금은 단편적으로, 비가 올때 시자의 건축이 어떻게 대응하는지 보자. 지금 비가 오고있으니까.


시자의 건물도 곡면의 지붕을 가지고 있다보니, 비가 한곳으로 모이게 된다.

아마 널려진 이불의 쳐진 곳으로 빗물이 고이고, 그 양끝으로 물줄기를 이루며 떨어질 것이라고 쉽게 예상 할 수 있다.

하지만 시자는 조금 더 섬세했다.

도시를 향해 열린 방향이 바다 쪽보다 살짝 더 높아서 빗물은 바다 쪽으로 물줄기를 이루며 떨어진다. 

하늘에서 땅으로 떨어지는 빗물이 강줄기를 만들며 바다를 향해 나아가는 이치를 거스르지 않는다.

그리고 물줄기가 떨어지는 그 아래에는 정확히 배수구가 있다.


이런 사소한 차이가 좋은 건축을 만들고, 좋은 건축가로 인정받을 수 있게 하는 것이 아닐까.



201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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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이라는 것. 이별이라는 것.

금요일의 크리스마스를 시작으로 새해가 되기까지 긴 연휴가 시작되었다.

영국은 크리스마스와 부활절이 가장 큰 명절이다. 그 중에서도 크리스마스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의 가장 큰 명절이다.
대부분의 회사가 25일부터 1월1일까지 휴가기간이고, 개인이나 회사에 따라서 더 긴 휴가를 갖기도 한다.

우리 사무실은 24일이 공식적인 마지막 근무일이었다. 
그리고 나의 마지막 근무일이기도 했다. 



마지막 프로젝트

나의 마지막 프로젝트는 백소장님과 함께 진행되었다.

4층짜리 빅토리안 하우스에 4개의 가구가 들어가야 했다.
우리나라의 원룸과 비슷한 개념인 Studio가 2가구, 2Beds House가 2가구 들어가야 했다.
London Design Guide에 의해 각 가구는 권장되는 최소 면적이 있다.
그것을 만족시키면서도 좋은 평면을 짜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다.
대상 건물의 앞쪽과 뒤쪽의 플로어가 약간의 단차를 가지고 있어서 더욱 어렵기도 했다.

클라이언트와 어느정도의 가능성만을 보는 단계여서, CAD로 간단하게 평면만을 작성을 했다. 
하지만 평면과 3D가 유기적이고 논리적인 Revit에서 계속 작업을 하다보니, 평면만을 그리는 것이 더 어렵고 성가신 일이 되어버렸다.
결국은, 평면 상에서 실수를 몇번 하는 바람에 소장님 앞에서 꽤나 진땀이 났다.
백소장님은 굉장히 꼼꼼한 성격이시고, 나는 마지막 프로젝트라는 생각과 시간에 쫓기며 작업을 하다보 더 긴장됐다.
조건을 만족하는 좋은 평면을 만드느라, 처음 목표로 두었던 날짜를 지나서야 마무리 되었다. 

프로젝트를 끝내고 클라이언트에게 보낸 뒤,
그동안 맡고 있었던 사무실 IT와 관련된 업무를, 내가 없이도 다른 사람이 이해하기 쉽도록 도표화, 서류화 했다.
이소장님과 함께했기에, 마지막까지도 이소장님이 생각하는 건축가가 가져야 하는 태도와 도구로 활용되기 위한 문서를 만드는 좋은 방법에 대해 피드백 받으면서 진행할 수 있었다.



누군가 떠난다는 것


지난주 목요일에 미리 나의 송별회로 Whitechapel에 있는 유명하고 맛있는 레스토랑에 다 함께 가서 Leaving lunch를 가졌다. 

다음날에는 크리스마스 파티를 했다. 
크리스마스 연휴가 시작되기 전에 미리 휴가를 떠나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에 모두 미리 행해졌다.

크리스마스 파티 때는, 가족과 애인을 초대해서 가족적인 분위기의 파티를 가졌다. 나와 소장님이 Alex도 초대했다.
사모님들께서 온갖 맛있는 음식을 해오셨고, 몇 주 전 미리 제비뽑기로 정해진 사람에게 선물을 주는 시크릿 산타도 진행하고...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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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일주일 간은, 업무와 관련된 이야기가 아니라면 내가 사무실을 떠나 한국으로 돌아가는 이야기만 내내 했던 것 같다.
내가 했던 많은 프로젝트들, 내가 사무실에서 담당하고 있던 역할들 등등... 

한 조직에서 나름의 역할을 맡고 있던 사람이 갑자기 빠지게 되면, 얼마간 그 조직은 당황하게 된다.
하지만 건강한 조직일 수록, 한 사람의 빈자리를 다른 사람들이 매울 수 있는 능력을 잘 갖추고 있다.
만약 누군가가 휴가를 갔을때, 그것 때문에 일처리가 제대로 되지 않는다면 그건 그 조직에 문제가 있는 것이다.
나는 Alex와 SA누나가 사무실을 나가고 나면 큰일이 날 줄 알았다. 근데 결국은 그 자리는 다른 사람에 의해서 채워져 나갔다.

소장님들이 나의 역할에 대해 높게 인정해 주시며 대체할 사람이 있을까라는 말씀을 많이 하셨지만, 결국은 내 자리도 누군가에 의해 잘 채워질거라 믿는다.



이별


그리고 나의 공식적인 마지막 업무일인 24일..

평소보다 일찍 업무를 마무리하고, 다같이 모여서 샴페인을 마셨다.
동료들이 써준 편지와 함께, 이소장님이 준비하신 선물도 받았다. 런던에서 함께 일한 시간을 잊지말라는 의미의 탁상시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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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지금까지도 더이상 내가 출근하지 않는다는 사실이, 런던을 떠나야 한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는다.
평소와 다름없이 출근하는 꿈도 꾸었다. 아무래도 다시 출근을 하고 싶은 것 같다.
단순히 다니던 회사를 그만 두는 것이 아니라, 최소한 몇년은 만나기 힘든 사람들이기에 더 슬프다.
런던을 떠나기 전에, 동료들을 위해 사온 선물을 전하며 마지막 인사를 할 생각이다.

지난 11개월 간, 사무실에서 일을 하면서 배운 것들은 학교에서나 다른 사무실에서는 절대 배울 수 없는 것들이었다.
나에게 많은 것을 직접 가르쳐주신 소장님들께 크게 감사함을 느낀다. 내가 가진 모든 경험과 고마움은 한국에 돌아가서 나 또한 베풀어야 한다는 소장님들의 말씀을 잊지 않을 것이다.
영어가 유창하지도, 경력이 많지도 않은 나와 일하면서 늘 나의 의견을 들어주고 챙겨준 동료들에게도 참 고맙다.


끝이라는 것, 이별이라는 것. 그게 익숙해 질 수도 있는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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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









단순히 기록을 위해 시작했던 일인데, 이 연재 덕분에 새롭게 알게 된 사람들이 정말 많네요.


건축관련 취업이나 인턴과 관련된 메일 및 질문을 참 많이 받았습니다.

영국에서 유학을 하고 계신 분들이라면, 전혀 걱정하실 필요 없고 얼마든지 많은 기회가 있습니다.

여러 조건에 맞는 회사에 들어간다는게 쉽지는 않겠지만요. 제가 아는 몇 분도 어려움이 있긴 했지만, 결국 모두 좋은 곳에 취업이 되었습니다.

Part1을 마친 후 인턴으로 경험을 쌓는 것은 보편적인 일 입니다. 동양인, 학생이라는 이유로 주저하지 마시고, 일단 한발 내 딛으세요.


한국에서 아직 학생이거나 졸업만 한 상황이라면 조금 더 어렵습니다.  

런던의 높은 물가와 전세계에서 몰려드는 이민자들 때문에, 전공을 막론하고 대부분의 경우 카페나 레스토랑 등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생활비 벌기에 급급합니다. 저도 1년 정도는 식당 등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며, 유럽 여행을 다닐 수 있다는데에 만족하고 지냈습니다.

하지만, 런던에서 작은 경험이라도 해보고 싶다는데에 목적을 둔다 기회를 잡을 수도 있을거라 생각합니다.

Indeed와 같은 구인구직사이트에서 건축설계분야의 인턴이나 Part1(우리나라의 건축학전공 3학년 수료와 유사)구인이 종종 올라오는 편이니 확인해 보시기 바랍니다.



그동안 Teo의 런던건축일기를 읽어주신 들께 고맙습니다.

연재는 끝이나지만, 궁금한 점이나 하고 싶은 말씀은 언제나 환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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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 찾은 도시는, 독일 남서쪽 끄트머리에 있는 Freiburg다.

프라이부르크는 언젠가 보았던 다큐멘터리로 기억에 남았다. 루르 공업지대의 재생 사례도 다큐멘터리를 통해서 보았던 것 같은데, 언제 보았는지 기억도 나지 않는 다큐멘터리 몇 편이 나를 독일로 이끈 것이다.


보통 영국이 날씨가 굉장히 안좋은 곳으로 다들 인식을 하고 있겠지만, 사실 프랑스, 독일, 네덜란드 등 모두 비슷한 기후를 가지고 있다.

한 여름이 아니라면 흐린 날이 많고 비가 조금씩 자주 오는 편이다. 

내가 독일을 여행 했을때에는 여름철이라 대체로 날씨가 좋았지만, 프라이부르크에서는 온종일 비가 오락가락 했다.

하지만 프라이부르크는 독일에서 일조량이 (그나마) 가장 많은 도시라서 와인제조가 발달 되어 있다고 한다.

프라이부르크가 친환경 도시가 될 수 있었던 데에는 이런 기후적인 특성도 무시할 수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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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에서 도심까지 이어진 보도블럭의 패턴이 특이했다.

일부 상점 앞에서는, 그 상점에서 판매하는 물건의 성격에 따른 문양이 새겨져 있다고도 한다. 나는 아쉽게도 놓치고 말았다.


독일답게 자전거도 많이 보였다. 기차를 타고 도시를 이동할때도, 자전거와 함께 이동하는 여행객들이 많이 보였다.

특히 독일인 여행객들은 40대 이상의 부부를 많이 보게 된다. 여행을 많이 하는 나라 다운 모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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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세에 쌓은 요새가 아직 남아있고, 사진에 보이는 것은 프라이부르크에서 가장 오래된 탑이자 요새의 출입구다. 여전히 마을의 중요한 길목이다.

바로 오른편 건물에 맥도날드가 간판을 달면서 맥도날드탑이라는 비아냥을 듣는다고 한다.

오른편 건물이 문화재는 아니라서 법적인 문제가 되지는 않나보다. 맥도날드는 엄청난 광고효과를 누리겠지만, 아쉬움이 있다.


사진 아랫쪽을 보면 트램이 달리는 레일과 베히레가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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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히레(Baechele)


프라이부르크에서 가장 유명한 것 중 하나다.

도심 곳곳을 노상으로 개천이 흐른다. 가축에게 물을 먹이고 화재를 막기위해 인공으로 만든 총 길이 15km의 베히레는 그 역사가 800년이 되었다. 

이런 개천은 독일 여러곳에 있었지만 지금 남은 곳은 프라이부르크가 유일하다.

사실 이렇게 길 위로 물이 흐르게 되면 금새 오염이 되어 악취가 나기 쉽상이다. 실제로 유럽에서 베히레와 비슷한 형태로, 빗물이나 생활하수가 배출되던 때가 있었음에도 지금까지 그것을 유지하고 있는 도시가 많지 않은 것은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프라이부르크의 베히레는 처음 설계때 부터 많은 신경을 쓴 듯 하다.

토목적으로는 도시외곽을 흐르는 드라이잠 강에서부터 도심의 가장 높은 곳까지 수로를 연결 한 뒤, 구배에 의해 자연스럽게 물이 도심을 돌고, 다시 자연하천으로 흘러 들어가도록 설계되었다.

지금은 항상 1급수 수질을 유지하고 있으며, 시민들 또한 베히레에 대한 애착이 강하기 때문에 누구 하나 베히레를 더럽히지 않는다. 

늘 맑고 깨끗한 물이 흐르고 있다.

여름철이 되면, 시민들은 발을 담구고 졸졸졸 흐르는 물소리를 들으며 더위를 식힌다. 발담구는 것 정도로 오염까지는 아니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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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히레에는 요런 조각배도 떠 다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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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도날드 간판에 비하면 이런 광고는 사랑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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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eiburger Münster앞에는 시장이 선다.

부슬비가 왔지만 시장은 여전히 활기를 띄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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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을 여행하다 보면 교회 앞은 넓은 광장이 있고, 그 광장에서 종종 시장이 열리는 것을 볼 수 있다.

성당 앞의 널찍한 광장은 교회를 축조할 때 꼭 필요한 공간이다. 필요한 돌을 쌓아두고 다듬는 작업장으로 쓰이기 때문이다. 

그 주변으로는 교회 건설을 위해 일을 하는 노동자를 대상으로 하는 식당 등이 생기게 되고, 교회가 완공된 후에는 교회와 그를 둘러싼 상점이 남아 광장을 만들게다.

중세부터 교회는 마을의 위치적, 정신적 중심이었기에 늘 사람들이 모여들고,  주변에서 상업행위가 이루어지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이렇듯, 우리가 동경하는 유럽의 아름답고 사람냄새 나는 모습들은 오랜 시간 자연스럽게 만들어졌다.

어느 순간 낡은 것을 싹 다 밀어버리고 만들어서는 볼 수 없는 모습이다.

우리나라의 도심에 세워지는 교회건축에서 유럽의 교회와 같은 도시적 역할을 기대하기 어려운 이유이기도 하다.


도심 교회에서 우리나라의 경우, 수 많은 교인들이 승용차를 끌고오기 때문에 교회건물보다 더 넓은 부지가 주차장으로 쓰이기도 한다.

교인이 아니라면 주차장이 텅텅 비어있을때 조차 주차하는 것을 금지하는데, 사유지라니 뭐 어쩌겠는가. 근데 세금은?


교회를 계획하는 단계에서부터, 그 넓은 부지에서 평소에는 도시적 행위가 이루어질 수 있는 여지를 만들어주면 좋을 것 같다.



Vaub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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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심에서 트램을 타고 20분정도 거리에 있는 보봉단지는, 지금의 프라이부르크가 친환경 녹색도시라는 명성을 얻게해 준 일등공신이 아닐까 싶다. 


우선 프라이부르크에서 환경운동이 시작된 가장 가까운 과거는 1970년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동화 헨젤과 그레텔의 배경이 되기도 한 Black Forest흑림에 환경오염과 산성비로 인한 피해가 나타나고, 인근에 핵발전소를 지으려는 연방정부의 계획이 알려지면서부터 대대적인 환경운동이 시작된다.

프라이부르크를 집결지로 학생, 반핵운동단체 그리고 전통적 가치관을 고수하는 시민 층에 이르기까지 각양 각색의 구성원들로 이루어진 반핵 연합전선이 형성되었고 이들은 지금까지도 시의 정책에 영향을 미치는 시민으로 자리 잡는다.


1986년 체르노빌 사고 이후, 시는 태양에너지를 새로운 주요 에너지 자원으로 선언하게 된다. 

태양광시설을 늘리고 에너지절약주택을 개발하고 보급하고 있으며, 92년 이후에는 시가 매각하는 토지에는 친환경건축만을 허가하고 있다. 

이런 에너지정책은 교통분야와 폐기물분야와 함께 연계되면서 프라이부르크를 진정한 친환경 도시로 탈바꿈시켰다.


보봉단지가 특히나 흥미로운 것은,  이 곳이 1차대전 때 독일군의 주둔지 였으며, 1992년 연합군이 독일에서 철수를 할때까지는 프랑스 군의 주둔지였다는 사실이다.

1995년, 이 곳의 활용방안에 대한 시민 공청회를 열었고 이때 보봉포럼이 만들어졌다.

보봉포럼은 새로운 생태마을을 만들기 위한 주민 아이디어로 시작되어 차없는 마을, 에너지 자립을 실현하는 마을을 만들기 시작했다.

그들의 실험은 아직 끝나지 않았지만, 이미 보봉단지는, 태양광과 바이오매스로 에너지를 생산하고 최소한의 에너지만을 소비하는 명실상부한 에너지자립 마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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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 내의 공동주차장 중 하나다.

보봉단지의 거주민들은 매년 자동차를 소유하지 않고 있다는 내용에 서명 해야한다. 

승용차를 포기한 주민은 무료 대중교통 이용권과 기차 이용 할인도 받을 수 있다. 꼭 승용차가 필요할때는 주민 모두 공유하는 자동차를 이용한다.

그럼에도 개인 승용차를 소유하겠다면, 공동주차장 이용료를 2009년 기준으로 연간 17,500유로에 사용료를 매달 추가로 내야한다. 

개인 주차공간을 만드는 것은 금지된다.

2009년 기준 약 70%의 주민이 자동차없는 삶을 살고 있으며, 보봉으로 새로 이사 오는 주민의 57%가 이사오는 즉시 자동차를 포기한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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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봉 단지의 곳곳에서 이런 그림이 그러진 표지판과 안내를 볼 수 있다.

이 표지는 거주구역 내의 길이며, 길에서 아이들의 놀이 등이 허용 된다는 것이다.


인터넷에서 보봉단지에 대한 글들을 검색 해보면, 단지 내에서는 차량 통행이 금지된다고 쓰인 글이 몇몇 있다.

내가 알기로 금지가 된 것은 아니다.

보봉은 차량진입을 금지시키는 것 보다 더욱 효율적인 방식으로 차량의 통행을 억제하고 있다.


보봉단지를 보여주는 지도다. 

붉은색으로 칠해진 길이 일반적으로 차량이 다닐 수 있는 도로다. 

오른쪽의 넓은 도로가 프라이부르크 도심에서 외곽으로 뻗어나가는 길이고, 보봉은 그 옆에 붙어있다. 이 도로 조차 왕복 3차선에 불과하다.

지도 아랫쪽 붉은 도로는 트램 정차장도 있고 보봉 단지내에서 가장 넓은 길이라고 볼 수 있겠다. 왕복 2차선 이다;

도로가 마을 외곽을 돌아나간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보행자는 주로 트램 정차장과 상점들이 있는 아랫쪽 길을 많이 이용할 것이다. 

마을 공동주차장은 그 반대인 윗쪽에 위치해 있다. 


노란색으로 칠해진 길은 거주구역 내의 길이다.

하지만 그 길의 형태를 보면, 마을을 가로 지를 수 있는 길이 전혀 없다. 모두가 Cul-de-sac(막다른 길)이거나 Crescent(돌아나오는 길)이다.

차에서 물건을 내리거나 특별한 목적에 의해 진입하는 것이 아니라면, 차량 통행이 없는 길이 된 것이다.


덕분에 보봉에서는 텔레토비같은 아이들이 골목골목을 마음껏 뛰어다닐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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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 내에서 차가 다니지 않기 때문에, 주위를 살피며 걸을 필요가 없고 당연히 신호등이나 넓은 길이 없어 보행친화적이다. 

주차장이 차지하고 있는 공간도 없기 때문에, 모두 푸른 숲과 아이들을 위한 놀이터로 채워졌다.

몇시간정도 잠깐 둘러보았을 뿐이지만, 정말 살고 싶은 마을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병영지의 오래된 나무들을 최대한 남겨둔 덕분에, 마치 숲 속 시골마을처럼 녹음이 가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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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포스팅에서는 수많은 건축가들의 작품을 한 곳에서 만날 수 있는 비트라 캠퍼스로 간다.

자료출처

Wikipedia - Vauban, Freiburg

'프라이부르크 녹색도시' - 한국어판 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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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가와 비평가

2015.12.22 09:59 from Teo/Di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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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가는 이상을 위해서 현재에서 싸우는 사람이고

비평가는 그들에게 미래를 제시하는 사람이다



2015.12.22

Old Spitalfields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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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다리를 오르다 아래를 내려다 보는 것


어느새 11월의 마지막 주도 끝이 났다.

이번달은 벨기에와 네덜란드 여행도 다녀오고, 마감에 임박한 프로젝트 두개를 정신없이 끝냈다.

시간은 늘 빠르게 그리고 야속하게 지나가 버리고, 이번달 역시 그렇게 흘러가버렸다.

흘러가는 시간 속에서 내가 무엇에 집중하고 있는지 조차 스스로 알지 못한채, 나 자신을 내버려두었던건 아닐까 하는 후회가 남았다.


여행을 가기전에는, 들뜬 마음으로 가득했다.

하지만 막상 여행지에서는, 내가 지금 왜 여행을 하고 있는건지 스스로도 이해가 되지 않는 순간들이 있었다.

벨기에는 사실 처음부터 큰 기대가 없었고, 네덜란드에서는 날씨가 심하게 좋지 않아서 고생스러웠다.

여행을 다녀와서는, 업무에 별로 집중을 하지 못하고 딴 생각만 계속 했던것 같다.


그러다 마지막 주가 되었고, 이번달에도 여러 손님들을 이벤트에 초대했다. 아마 근래 이벤트 중에서 이번달에 가장 많은 손님이 온 것 같다.

이번달은 UCL에서 강의를 하는 교수님이 오셔서, 도시개발과 관련된 주제로 유익한 프레젠테이션이었다.

프레젠테이션 후에 맥주와 와인을 마시며, 모두들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고 소장님들과 교수님도 마지막까지 남아서 흥미로운 이야기들을 많이 나누었다.

새벽 2시가 되어서야 사무실을 나왔다.


이번달 우리 회사 Monthly Event는 내가 호스트로서 손님을 맞는 마지막 이벤트가 되었다.


12월은 내부적으로 크리스마스 파티를 하기로 했고, 내년 초에 나는 한국으로 돌아가야 하기 때문이다. 

1월 한달간 여행을 하다가 2월 초에 한국으로 돌아가는 항공권을 예약했고, 사무실은 12월까지 출근하기로 했다.

이제 출근할 날이 한달도 채 남지 않은 것이다.


그동안 정말 다양한 프로젝트를 접했다. 한국에서, 학교에서 그리고 우리 사무실이 아니라면 절대 알 수 없는 것들을 경험하고 알게 되었다.

특히 이소장님께서는 늘 본인의 경험이나 지혜를 우리에게 나눠주려고 애쓰신다. 

하지만 정작 나는 지난 10개월간 얼마나 변화하고 발전했나 되돌아보면 스스로가 한심스러울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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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일 늦게 퇴근을 한 뒤, 집에서 책을 보다가 잠시 눈을 감았더니

눈 앞에 한 장면이 떠올랐다.


좁은 수직 통로에서

끝을 알 수 없는 사다리를 오른다

바닥이 까마득할 만큼 올라왔지만

차라리 아래를 내려다보는 것은 아프지만 쉬운 일이다

고개를 위로 쳐드는 것은 어렵고 막막한 일이다.


사다리에서 손을 놓아버리면 저 아래로 떨어질 것은 예상할 수 있지만

이 사다리가 무엇을 위한 것인지 그 끝에 무엇이 있는지는 알 길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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쾰른의 짧은 일정을 서둘러 마무리하고 찾은 다음 도시는 Frankfurt다.

프랑크푸르트는 독일에서 가장 높은 건축물들이 모여있는 도시로, 유럽중앙은행을 비롯해 여러 기업이 밀집해 있다.

그래서인지 국제 항공편이 많고, 괜히 프랑크푸르트라는 이름이 익숙하다. 


관광객으로 프랑크푸르트를 찾는다면, 대부분 Museumsüfer라 불리는 박물관 지구를 갈 것이다.

나 역시 박물관 지구 내에 있는 독일건축박물관과 Stadel Museum 그리고 Richard Meier가 설계한 Museum Angewandte Kunst 등을 보려고 프랑크푸르트를 찾았다.

박물관 지구 외에도 괴테의 생가나 Römerberg 광장 등이 유명하다.


 


중앙역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마인강의 남쪽과 북쭉으로 여러 박물관/미술관이 모여있다.




Günter Behnisch가 설계한 Communication Museum이 눈을 사로 잡는다.

귄터 베니쉬는 뮌헨 올림픽 공원의 마스터 플랜을 한 것으로 유명하다. Frei Otto가 설계한 주경기장으로 잘 알려진 바로 그 뮌헨 올림픽 공원이다.


귄터 베니쉬가 어떤 건축을 했는지는 아직 잘 모르지만, 그에대해 정보를 찾다보니 인터뷰 내용들이 썩 흥미롭다.

좀더 공부를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건축가다. 

베니쉬의 인터뷰를 보고 싶다면 다음을 펼쳐보길 바란다.


인터뷰 보기




독일건축박물관, O.M.Ungers X Ingo Schrader




독일건축박물관. 이곳은 건축가 Oswald Mathias Ungers의 집이기도 했던 건물이다.

웅거스는 독일건축에서 가장 큰 영향을 끼친 건축가로 평가된다. 

19세기에 지어진 이 건물의 전면파사드만 남기고 개조해 자신의 집으로 이용했고, 이후에는 그의 업적을 기리는 건축박물관으로 개관했다.

개관을 한 뒤 5년 간은 포스트모더니즘의 시기와 겹쳐 활발한 전시와 담론이 오고 갔다. 하지만 90년대에 들어 방문자수가 급감하면서 박물관을 폐쇄한다는 소문까지 돌았다. 

웅거스를 기리고 건축박물관을 존치시키는 것에 공감대를 가진 사람들이 힘을 모았고, 지역건축가 Ingo Schrader의 개보수로 재개장 하여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입장료를 내고 나면 이런 스티커를 붙이고 입장한다. 아마 날마다 색깔이 바뀌는 것 같다. 그럼 초록색이 돌아오면 무료??

나중에 가게되는 비트라 뮤지움에서도 이런 스티커가 입장권의 역할을 했다.


입장 문턱을 넘기위해 구입한 표를 보여주고 박물관에 들어가는 것과 달리, 몸에 스티커를 붙이는 것은 무언가를 체험하러 들어간다는 느낌을 줬다.

마치 놀이공원에서 손목에 종이팔찌를 감거나 손등에 도장을 찍는것과 같이 말이다.

형식상 크게 다를 것은 없으나 이런 사소한 것에서부터 사용자경험의 차이가 생긴다.



기획전시 공간에서는, 부산 영화의 전당 설계로도 잘 알려진 Coop Himmelb(l)au의 전시가 이루어지고 있었다. 

프랑크푸르트 도시 개발의 과정을 보여주는 전시가 있었던 걸로 아는데, 그 전시를 볼 수 없어서 다소 아쉬웠다.


독일건축박물관은 상설전시보다는 다양한 기획전시를 선보이며, 일반대중과 전문 건축인 사이의 간극을 좁히기 위한 노력을 한다고 한다.




쿱 힘멜브라우의 여러 작업 중에서도 프랑크푸르트에 위치한 유럽중앙은행의 설계과정이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었다.

프로젝트 하나를 위해서 만든 매스모형의 수가 굉장했다.  조형성에 있어 많은 고민을 한 듯 하다.






아까 스티커 로고가 도트 디자인으로 되어있었듯이, 미술관 내 대부분의 타이포그래피가 도트 디자인으로 되어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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렘 쿨하스가 좋아하는 집 속의 집 개념이다. 약간 유치한 듯 하지만 상징성을 주려 한 것 같다. 

수직적 공간연속성을 느낄 수 있게 한다. 단면적으로 조금 더 재밌는 공간이 있었다면 하는 아쉬움이 있다.



상설전시는 독일건축에만 제한되지 않고, From primordial hut to skyscraper라는 주제로 원시주거부터 시대별로 주목할 만한 건축을 모형으로 보여준다.



19세기 런던으로 몰려든 노동자들이 살던 열악한 주거환경 모습이다. 그림으로 유명한 장면인데 입체적 모형을 만들었다.




디지털로 아카이빙 된 정보도 컴퓨터를 통해 쉽게 접근할 수 있다.


물리적인 아카이브 기능은 조금 떨어진 곳에 따로 건물이 있다고 한다. 독일 건축에만 한정되지 않고, 2만여권의 책을 소유하고 있다. 그 외에도 18만 여건도면과 스케치, 600개의 모형, 사진, 가구 등을 수장하고 있다고 한다.

그외에도 자료 수집과 연구 그리고 다양한 세미나와 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으며 연간지 출판과 건축상 수여도 하고 있다. 

독일건축박물관은 단순히 건축 관련 전시를 주최할 뿐 아니라, 건축문화 발전을 위해 다양한 면에서 힘을 쓰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건축박물관에서 중요한 볼거리 중 또 하나가 바로 마인강 넘어로 보이는 프랑크푸르트의 스카이라인이 아닐까 싶다.




동선 상의 마지막에 기획전시실이 하나 더 있었다. Iwan Baan이라는 사진작가가 52주간 52개 도시에 머물려 찍은 사진이 전시되고 있었다.

한국은 얄밉게 피해다녔더라.. 작가 개인적으로 한국에 대한 매력을 느끼지 못했나보다. 분발하자. 때로 여행객은 단 한 장의 사진때문에 그 도시에 이끌리기도 한다.




Museum Angewandte Kunst, Richard Meier




건축학과에 입학하면 가장 먼저 배우는 것이 근대건축의 4대거장이다.

르 꼬르뷔제, 프랭크 라이트, 미스 반데 로에, 그로피우스.


그리고 나 스스로 깊은 관심을 가지게 된 첫 건축가는 리차드 마이어 였다.

작업실 스터디에서 모두가 소규모 주택을 선택할 때, 나는 겁도 없이 리차드 마이어의 바르셀로나 현대미술관에 빠져들었다.

그리고 방학 내내 작업실에서 숙식하며 모형을 완성했던 적이 있다. 건축에 대한 열정이 불타올랐던 첫 순간 이었다.


지금은 그때만큼 리차드 마이어를 좋아하진 않지만, 여전히 그의 작품은 첫사랑과 같은 애틋함이 있다.




미술관 앞의 공원이 참 좋았다. 볕이 잘 들었고, 공원 여기저기서 사람들이 여유를 즐기고 있었다.



크게 자란 나무들 때문에 건축물 전체적인 모습이 한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하지만 그 덕분에, 자칫 압도적일 수 있는 거대한 백색 건축이 한결 부드럽게 느껴졌다.





철저한 정사각형의 그리드 상에서 만들어지는 입면과 평면 그리고 기하학적 곡선의 첨가에 백색 마감.

그의 건축은 누가 알려주지 않아도 확실히 알아볼 수 있다. 


내가 찾았을때는 이미 미술관 폐장시간이 지난 뒤였고, 나의 일정 또한 시간이 넉넉치 않았다.

확실히 이번 여행은 많은 건축물을 보려다 보니, 일정이 다소 빡빡했다.


하나의 큰 덩어리가 아닌 3개로 분절 된 볼륨과 그 사이에서 만들어지는 매개공간이 흥미로웠다.


이 프로젝트는 그의 프로젝트 중에서도 비교적 주변 맥락에 대한 많은 고민이 많은 편이다.

대상지 내에 19세기 빌라를 존치하는 것이 중요했고, 마인강변에 있다는 점과 공원 내에서의 경관 또한 무시하지 않았다.

기본적으로 평면은 두 개의 그리드 위에서 이루어졌다.

빌라의 배치와 평행한 그리드를 만들었고, 다른 하나는 그것을 마인 강이 만든 자연적인 선에 평행하도록 비틀었다. 


여기에 그치지 않고 빌라의 입면을 분석 만들어진 정사각형 그리드를 자신의 건물 적용시켰다.



공원 내의 통행로를 대상지 내에 관통 시킴으로써 개방성과 공공성을 가지게도 했다.


이로써 두개의 그리드 시스템 위에 사선으로 관통하는 두개의 통행로가 더해져, 상당히 복잡한 선들을 가지게 되었다.

보통 이렇게 여러 선을 따르면, 그것을 정리해서 건축화 시키는데에 굉장히 애를 먹는다. 하지만 이것이 바로 마이어의 강점이다.








날씨가 아주 맑았고, 좋은 건축을 많이 본 덕분에 짧은 시간이나마 좋은 기억으로 남은 도시가 되었다.

슈타델뮤지움이나 뢰머광장도 보지못했고, 독일에서 가장 높은 건물로 노만 포스터가 설계한 Commerzbank본사 건물도 놓쳤다.


프랑크푸르트를 찾기 위한 핑계거리를 남겨놓았다고 위로한 채,

Freiburg와 Vitra Campus를 향하는 기차에 몸을 실었다.



※참고문헌 - 독일 건축 박물관, 백경무, 대한건축학회지 2003년 8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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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셀도르프의 친구들을 뒤로 한 채, 쾰른으로 이동을 했다.

뒤셀도르프는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주의 주도였지만, 쾰른은 주에서 가장 큰 도시이고 프로이센 시절에는 베를린 다음의 도시였다.


또, 세계문화유산으로도 등재 된 쾰른의 대성당을 빼놓고는 독일의 건축에 대해 말할 수 없을 것이다.



Cologne Cathedr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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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유명한 쾰른 대성당. 쾰른 중앙역에서 나오면 바로 왼편에 있다.

수많은 관광객이 대성당을 보기위해 쾰른을 찾을텐데, 역 바로 앞에 떡하고 있으니 사람들이 쾰른이라는 도시에 대해 좀더 느낄 수 있는 기회가 없을 듯 하다.


도시의 중앙역과 많은 관광객이 찾는 건축물이 함께 있다보니 성당 주변은 과도한 교통량으로 몸살을 앓았다.

중앙역이 있는 성당 북쪽은 로마시대 성벽이 있었던 탓에 다른 곳들 보다 지면이 매우 낮아서 성당 주변 상황은 문제가 심각했다고 한다.

낡은 건물과 호텔 일부를 철거하여 지금과 같은 광장을 조성하고 서측 정면 부의 지대를 높여 아래를 주차장으로 활용하는 방안이 나오면서 어느정도 해결이 되었지만, 여전히 문제들을 안고 있다. 


독일에서 가장 유명한 건축물의 바로 뒤로 대규모의 중앙역이 들어서게 된데에는, 프로이센 왕족들이 쾰른을 방문할때 역에서 내리자마자 대성당을 보기 위함이었다. 

수백년 간 미완성인 채로 방치되었던 성당의 건설 비용 대부분을 왕가에서 부담했기 때문에 이것을 반대할 사람도, 반대할 이유도 별로 없었으리라. 

쾰른 대성당은 결과적으로 1880년에 완공되었다. 1248년에 건축을 시작해서 600년이 넘게 걸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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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유명한 고딕건축물이자 한때 세계에서 가장 높았던 건축물[각주:1]답게, 어마어마한 위용을 자랑한다.


원래는 회백색이었으나 2차대전때 직접적인 폭격은 피했지만, 소이탄 폭격으로 화재가 난 주변의 재를 고스란히 뒤집어썼다.

현재는 산성비 부식과 매연으로 인해 검게 변해버렸다. 

색이 되지 않았더라면, 대리석으로 치장된 밀라노 대성당 만큼은 아니겠지만 밝게 빛나는 쾰른 대성당을 볼 수 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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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번 고딕건축 내부에 들어올때마다, 조명이 전혀 없는 상태는 어떤 느낌일지 궁금하다.

중세시대 였다면, 인공조명이라고는 촛불이나 등 밖에 없었을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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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 백년간 공사가 중단되던 시기에는 성당이 완공되면 세상이 멸망한다는 말이 있을 정도였다.

600년을 한 자리에서 건설과 방치를 반복하던 건물을 결국은 완공해 내었다. 이것은 한 사람의 왕이 해 낸 일도, 하나의 제국이 이루어 낸 일도 아니다. 

이 거대한 건축을 계획한 것은 물론, 언젠가는 완공 시키겠다는 신념 그리고 그 오랜기간 동안 방치된 폐허를 그냥 없애버리지 않은 그들이 참으로 대단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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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딕건축은 조각과 건축의 극단적인 특징을 모두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흔히 조각과 건축의 차이는 사람을 위한 내부공간을 가지느냐 아니냐에 있다고 말한다. 하지만 이는 건축의 내부적 공간 형성에만 초점을 맞춘 것으로, 건축물이 컨텍스트에 영향을 받을 수 밖에 없으며 도시와 맺는 관계의 중요성을 간과하기 쉬운 생각이다.

중세의 교회마저도 단순히 내부 공간의 수직성만이 중요하진 않았다. 종교 건축은 그 마을 구조에서 중심이 되는 역할을 했다.

교회를 주변으로 도시가 가장 활발하게 움직였고, 교회 앞에서 장이 열리는 전통이 아직 남은 도시들도 있다.


예술과 건축이 경계없이 넘나들던 시대의 사람들에게 조각과 건축에 대한 질문을 하면 어떤 대답을 들려줄지 궁금하다.

어쩌면 근대 이후의 우리는 무언가를 정의할 때, 다른 것과의 차이를 말하는 버릇이 생겨버린 건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그것이 극으로 달릴 때, 편을 가르게 되고 사회는 분열된다. 

모든 것을 이분법적으로 가르는 것은 경계해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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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일생동안, 그것을 즐기든 그렇지 않든 여행을 한다. 인생은 여행과 같다고 말하기도 한다.

사람들은 잘 인지하지 못하지만, 여행객들이 도시마다 보러다니는 것의 대부분은 건축이다.

건축은 그 도시와 오랜시간 함께해 온 가장 큰 흔적이자 지금 도시가 살아가고 있는 모습을 가장 쉽게 보여주는 지표이기 때문이다.


수많은 청년들이 각종 미디어의 바람에 자극을 받아 유럽여행을 떠나고, 유럽의 도시들을 보고 돌아가는 비행기에서 한탄을 하곤 한다. 

왜 우리나라는 이런 곳이 없을까.


그것은 우리가 자꾸만 지나온 흔적을 지우려하고, 우리 그대로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을 부끄럽게 여기기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비단 정치인 한 사람의 문제도, 재벌과 친일파 때문만도 아니다.


있는 그대로 두는 것은 흔적이 되고, 흔적은 역사가 된다. 

오래되고 낡았다 생각하는 것에서, 그것이 우리의 삶이자 가치임을 볼 수 있어야 한다.

단순히 관광객을 모으기 위함만은 아니다. 그것이 우리가 역사를 기억하는 방법이며, 정체성을 잃지않고 미래를 준비할 수 있는 길이다.


아직은 우리에게도 가치있고 재미있는 곳들이 많이 남아있다고 생각한다.

이제라도 그것을 알아보고, 잘 가꾸어 가는 노력이 필요하다.




Kolumba Museum, Peter Zum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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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만나는 피터 줌토의 건물이다.

쾰른 대성당을 지나, 어느 대도시에서나 만나는 브랜드로 가득한 쇼핑거리를 통과하고 나면 콜룸바 뮤지움이 있다. 


쾰른 외곽의 벌판 한 가운데에는 줌토스러운 종교건축이 하나 있다. 사실 그 건물을 보러가고 싶었으나...


Bruder-klaus-kapelle


© Samuel Ludwig © Samuel Ludwig

교통편이 아주 열악해서 하루종일은 걸릴 것 같아 포기했다. 다음에 쾰른을 찾을때는 꼭 가볼테다.


콜룸바는 내가 모르던 건물인데, 0Fany형이 말해주지 않았다면 놓쳤으리라.

왜 여태 이 건물을 몰랐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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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룸바 뮤지엄은 St. Columba Church가 있던 자리다. 

2차 세계대전으로 폐허가 된 곳을 Gottfried Böhm고트프리드 뵘에 의해 Madonna of the Ruins폐허의 마돈나 라는 애칭으로 불리는 예배당이 지어졌다.

그리고 2005년, 공모에서 당선 된 줌토에 의해 지금의 미술관이 지어졌다. 

폐허가 된 고딕성당과 1950년의 예배당, 현대의 미술관이 하나의 건물이 된 것이다.



이 사진은 뵘의 예배당이 지어지고 중세성당의 발굴이 이루어진 후인, 1982년에 찍힌 사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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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장소에서 이렇게 시간의 차이를 두고 이루어진 건축행위가 현재까지 이어지며 하나의 건축이 되었다는것이 정말 놀랍다.


예전 모습과 이렇게 나란히 두고보니, 쾰른 대성당이 보이지 않게 되었다는 건 좀 아쉽다.

건물 안으로 들어가면 쾰른 대성당이 보일테니 그럼 들어가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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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문은 아니지만, 미술관을 이용하지 않을 시민들도 언제든 성당의 유적지를 볼 수 있도록 따로 문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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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여태 내가 이 건물을 몰랐을까. 일부를 보았을 뿐 인데 심장이 뛰기 시작했고 얼른 내부로 들어가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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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제된 재료의 사용으로, 내부에서도 깔끔하고 고급스러운 느낌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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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이 바로 고딕, 1950년 그리고 현재가 공존하고 있는 곳이다.

콜룸바 뮤지엄을 위해 특별 제작한 회색벽돌이 폐허가 된 교회의 벽과 빈틈없이 맞물려 있고, 그 위쪽에는 촘촘한 구멍들을 만들어두었다.

채광과 환기, 습도유지가 이루어짐과 동시에 외부에서 나는 도시의 소리들이 침투해온다.


세월의 흔적과 전쟁의 참혹함을 볼 수 있는 고딕 교회의 폐허는 경외감이 들게 하고 은은한 빛은 신비감이 들게 하지만, 그와 동시에 도시의 소리가 들려오는 것은 우리가 현재에 있음을 깨닳게한다.

역사는 과거에 머물러있는 것이 아님을, 연속되고 있음을 인지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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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 0Fany형을 건덕후라고 부르는 사람이 몇명 있다. 나는 건축을 좋아하긴 하지만 그렇게 덕질을 하는 사람은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이 건물을 보면서는 계속 하악하악 댈 수 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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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룸바 뮤지엄에서는 미술품에 그 어떤 설명이나 작가의 이름이 적힌 패널을 찾을 수 없다.

하지만 보자마자 이 작품은 리차드 세라의 작품이라는 느낌이 확실히 들었다.

나중에 확인해 보니, 건축공모를 시작하기 전에 유적의 재탄생을 위한 일종의 선언으로써 세라의 작품을 이 곳에 설치 했다고 한다.


세월의 흔적이 그대로 드러나는 붉은 벽돌과 붉은강철 그리고 회색벽돌의 조화가 자연스럽고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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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부마감으로 쓰인 벽돌은 구조적으로 버틸 수 있는 한, 최대로 가늘고 긴 크기로 특별히 만들어졌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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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으로 보이는 것이 뵘이 설계한 폐허의 마돈나-예배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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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1층의 교회유적을 둘러본 뒤, 상부층에서는 전시공간이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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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이상 말이 필요한가?



계단실은 폭이 좁고 깔끔한 마감을 하고 있다. 수직으로 이동하는 전시공간까지 정적인 분위기를 유지할 수 있도록 했다.

다만, 일반적으로 이용하는 수직동선이 이 계단 뿐이라서 사용자가 서로 엇갈려 위아래로 이동하기에는 불편하다.

Metric handbook에 나오는 수치에따라 일반적 설계로는 절대 만들지 않을 계단이다. 


관람객들이 시끌벅적 수다를 떨면서 계단을 오르내리거나, 초등학생들이 계단에 앉아 도시락을 까먹는 행위 따위는 내 건물에서 만들지 않겠다는 건축가의 확고한 의지가 엿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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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밖으로 쾰른 대성당이 보인다. 1982년의 사진에서의 그 모습 그대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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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비된 책을 읽을 수 있도록 만들어진 공간인데, 이 곳을 꾸미기 위한 나무, 가죽 등의 모든 재료 또한 줌토가 일일이 정한 좋은 품질의 것들 이라고 한다.

갑자기 진한 색감의 고급스러운 공간으로 바뀌어서 그랬는지, 편안함보다는 부담스럽게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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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룸바 뮤지움의 총 16개의 크기, 비율, 의 유입 정도 등이 다른 전시 공간을 가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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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개로 구획된 전시공간은, 각 전시품의 성격이나 크기에 맞추어 수용 할 수 있다.


현대미술관은 보통, 전시 공간의 유연성을 위해 유니버셜 스페이스를 만드는데에 중점을 두는 편이다.

하지만 줌토그런 공간을 만들 수 있었음에도, 볼륨을 조절하여 크기가 다른 전시실들을 만들고 공간을 구획했다. 

공간의 깊이감과 위계, 다양성이 만들어졌다. 

정확한 의도는 알 수 없지만, 콜룸바 뮤지움이 일반 공공미술관 처럼 많은 전시물과 잦은 특별전시가 이루어지는 미술관이 아니기에, 좀더 완성도 높은 전시공간을 위함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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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에 이어질 곳은,

독일건축박물관이 있는 프랑크푸르트와 친환경 도시 프라이부르크다.





  1. 완공 된 1880년 부터 워싱턴기념비가 세워진 1884년 까지 가장 높은 건축물이었다고.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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