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없던 초딩시절.

 


철보다도 나에게 더 부족했던 것은... 의외겠지만 자신감이었다. 요즘말로는 진짜 상쫄보.

성격은 내성적이라 거의 학교에서는 말이 없었다. 생활기록부에는 조용하다. 차분하다라는 말이 습관처럼 혹은 별명처럼 붙어다녔다. 그리고 여자친구들을 보면 말도 못꺼내고, 오히려 무서워서 말도 못걸었다. 어려서부터 무슨 선비도 아니고 '여자보기를 돌같이 하라'도 아니고... 그 시절 나 좋다는 여자한테도 무관심으로 일관했다. 심지어 편지를 주면 찢기도 했으니... 이건 뭐 지금 생각해보면, 내 행동이 왜 그랬는지 사실 궁금하다.

 


뿐만 아니라, 수업시간에는 손도 못들었다. 아는 것을 말하지도, 하고 싶은 것도 하지 못했다. 손을 들면, 주목을 받고 그리고 그 시선들을 받으면 떨려서 심장이 너무 뛰어서 내 목소리보다 더 커서 들킬까 걱정했다. 초등학교 3학년 무렵일까? 독감이 너무 심해서 집에 가고 싶었다. 그래서 처음으로 용기내서 말한다는게 "선생님, 감기때문에 너무 아파서 그런데 집에 가고 싶어요"라는 말이라니... 하지만 그 말도 제대로 못해서 나는 "선생님, 기침이 걸려서 집에 가고 싶어요..." 반 애들은 모두 나를 비웃었다. 나는 뭐가 문제지? 라고 생각하고 솔직히 오줌을 쌀뻔했다...그 비웃음... 여튼 내 초등학교 유년시절은 어찌보면 지금의 나와 너무 상반되서 어색하지만, 그 모습또한 나이기에 나는 사랑한다. 이 기억들이 무의식적 트라우마였는지 아직도 기억이 난다.

 


각설하고, 나는 이 이야기 하나만 기록하고 싶다.

학교 앞 신바람문구사라는 곳에서 나는 인생에서 처음 외상을 해본다. 가격은 약 5~6000원 가량 했던 작은 레고였다. 너무 갖고 싶었고, 나말고 누가 갖는게 싫어서 였는지 급하고 구매했다. 그리고 2주 정도 지나서 힘들게(?) 모았던 용돈을 주머니에 넣고 즐거운 마음으로 문방구를 찾았다. 외상노트에 내이름을 지우는게 내겐 중요했다. 코찔찔이 꼬꼬마 시절부터 채무에 대해서는 민감했나보다.

 


아니 왠걸? 주인이 바뀌었다.(상호명이 바뀐건 아니지만...확실히 친가족 관계도 아닌 새주인으로 추측된다.) 근데 그 주인이 나에겐 중요한게 아니다 장부에 내 이름을 지우는 것 그리고, 내 외상을 갚는게 더 중요했다. 나 스스로 묻고 따지지도 않고, "아저씨, 지지난주에 외상한거 갚으로 왔어요. 이름 좀 지워주세요." 새 주인장은 조금 당황해했다. 당연하겠지... 그리고, 당장 그 당황한 기색을 숨기고, "아 이전에 외상을 했구나~" "얼마지?"라고 하며, 돈을 받고는 고맙다~라고 나를 돌려보냈다. 사실 나도 바보는 아니다. 상황적 분위기도 그렇고 그의 행동패턴... 내가봐도 나는 그 순간 눈치채고는 달아났거나, 아니면 호기롭게 "어?, 주인이 바뀌었네...그냥 갈께요.."라고 등등 여러가지 다른 행동도 할 수 있었지만, 난 그럴 수 없었다. 왜냐하면 나는 외상을 했기때문이고, 누군가의 물건을 빌렸으면, 혹은 돈을 빌렸으면 그대로 가져다 주어야한다. 그 정도는 알았다.

 


그렇게 외상값을 치루고 집에 돌아와 부모님에게 말했다. 역시 의견은 달랐다. 살림의 위해서 한 푼이라도 아껴야 하셨던 어머니는 "잘 말해서 이전 주인이랑 상관없으면 돈 줄 필요 없지." 아버지께서는 "잘 했다. 너는 돈 갚으러 갔다가 무슨 딴 생각을 하려고 하냐며 꾸짖으셨다." 그리고, 다음날 학교에서도 친구에게 말해주니. 긴 문장은 필요없다. 단어로 나열하자면, 바보-멍청이-쪼다...등등... 그 돈으로 뭘 사겠다. 자기네들끼리 무슨 로또 맞은 마냥 이상한 계획을 펼치기 시작했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은

 


그 시절, 코찔찔이에 쭈구리 말도 제대로 못해서 오줌 쌀뻔한 완두콩만한 심장의 약해빠진 나와 지금 내가 남에게 어떻게 비춰지는지 모르겠으나... 그 초딩 영환의 시절이 너무 고맙다는 말을 하고 싶다. "누군가에게는 당연한거 아냐? 아니면, 무슨 멍청한 소리야?"라고 할 수 있지만, 나는 나(초딩시절의 영환)를 너무 고맙게 평가하고 싶다. 지금 그 행동을 안하고, 조금더 욕심을 내거나 계산적 셈을 했다면 나는 어떤 삶을 살고 있을까? 작은 행동들은 누적되기 마련이다. 그러기에 나는 어린 나를 보고 지금도 크게 변하지 않은 것 같아서 다행이라 생각된다. 나 스스로 내 주변인에게 얼마나 떳떳한가? 라고 했을 때 나는 어디까지가 정직이고 어디까지가 교활한 것인지 가늠할 수 없다.

 


하지만, 이 말은 할 수 있을 것 같다. 경쟁에 있어서 항상 평등하기 위해서 혹은 부정을 보더라도, 나는 나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눈을 감고 나와의 싸움을 했다. 결과는 뻔하게 실패임을 알면서도, 막연하게 일을 했었던 적도 있다. 바보 같고, 미련해 보일 수 있다. 무언가 가치를 위해서 한다기 보다는 그냥 나와의 싸움인 것 같았다. 마치 이 이야기의 끝은 하나의 성장드라마 처럼 좋은 결말로 나아갈 것 같지만... 나는 기대하지 않는다. 세상은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을 것이다. 나 또한 잘 알고 있다. 나도 이제는 적당한 셈법을 하기 위해 마사지를 받는 중이다. 10년도 지난 혹은 20년이 지난 이야기는 이제와서 나에게 심적인 외상까지 후련하게 갚아낸 기분이다.

 


오히려, 그 주인이 고맙다. 그 분이 멍청하건 혹은 순수하건 나에게 불량식품하나 건네며, 이거 먹으면서 가라 고맙다. 이러지 않아서... 그랬으면, 집으로 돌아가는 내내 달콤 짭짤한 과자가 그 기억을 순식간에 용해시켰을 것이다. 그리고 지금의 시간도 갖지 않았을 것이며, 그 행동의 소중함과 중요성을 몰랐을 것이다.

 


이 이야기가 더 소중한 건 현재 우리 사회에 과연 외상을 할 수 있는 곳이 존재할까? 라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나는 누군가에게 쉽게 외상을 받을 수 있을까? 라는 근본적인 물음에도 나 스스로 답하기 힘들다. 서로의 신뢰를 통해 더욱 끈끈한 유대감을 형성하거나 혹은 어리석은 믿음으로 상처를 받을 수 있는 외상문화. 단순히 돈을 빌리고 갚는 문제가 아닌 나의 정신을 돈으로 평가하는 순간이기도 한 이 실험적인 기회는 또 다시 올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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