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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셀도르프의 친구들을 뒤로 한 채, 쾰른으로 이동을 했다.

뒤셀도르프는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주의 주도였지만, 쾰른은 주에서 가장 큰 도시이고 프로이센 시절에는 베를린 다음의 도시였다.


또, 세계문화유산으로도 등재 된 쾰른의 대성당을 빼놓고는 독일의 건축에 대해 말할 수 없을 것이다.



Cologne Cathedr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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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유명한 쾰른 대성당. 쾰른 중앙역에서 나오면 바로 왼편에 있다.

수많은 관광객이 대성당을 보기위해 쾰른을 찾을텐데, 역 바로 앞에 떡하고 있으니 사람들이 쾰른이라는 도시에 대해 좀더 느낄 수 있는 기회가 없을 듯 하다.


도시의 중앙역과 많은 관광객이 찾는 건축물이 함께 있다보니 성당 주변은 과도한 교통량으로 몸살을 앓았다.

중앙역이 있는 성당 북쪽은 로마시대 성벽이 있었던 탓에 다른 곳들 보다 지면이 매우 낮아서 성당 주변 상황은 문제가 심각했다고 한다.

낡은 건물과 호텔 일부를 철거하여 지금과 같은 광장을 조성하고 서측 정면 부의 지대를 높여 아래를 주차장으로 활용하는 방안이 나오면서 어느정도 해결이 되었지만, 여전히 문제들을 안고 있다. 


독일에서 가장 유명한 건축물의 바로 뒤로 대규모의 중앙역이 들어서게 된데에는, 프로이센 왕족들이 쾰른을 방문할때 역에서 내리자마자 대성당을 보기 위함이었다. 

수백년 간 미완성인 채로 방치되었던 성당의 건설 비용 대부분을 왕가에서 부담했기 때문에 이것을 반대할 사람도, 반대할 이유도 별로 없었으리라. 

쾰른 대성당은 결과적으로 1880년에 완공되었다. 1248년에 건축을 시작해서 600년이 넘게 걸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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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유명한 고딕건축물이자 한때 세계에서 가장 높았던 건축물[각주:1]답게, 어마어마한 위용을 자랑한다.


원래는 회백색이었으나 2차대전때 직접적인 폭격은 피했지만, 소이탄 폭격으로 화재가 난 주변의 재를 고스란히 뒤집어썼다.

현재는 산성비 부식과 매연으로 인해 검게 변해버렸다. 

색이 되지 않았더라면, 대리석으로 치장된 밀라노 대성당 만큼은 아니겠지만 밝게 빛나는 쾰른 대성당을 볼 수 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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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번 고딕건축 내부에 들어올때마다, 조명이 전혀 없는 상태는 어떤 느낌일지 궁금하다.

중세시대 였다면, 인공조명이라고는 촛불이나 등 밖에 없었을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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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 백년간 공사가 중단되던 시기에는 성당이 완공되면 세상이 멸망한다는 말이 있을 정도였다.

600년을 한 자리에서 건설과 방치를 반복하던 건물을 결국은 완공해 내었다. 이것은 한 사람의 왕이 해 낸 일도, 하나의 제국이 이루어 낸 일도 아니다. 

이 거대한 건축을 계획한 것은 물론, 언젠가는 완공 시키겠다는 신념 그리고 그 오랜기간 동안 방치된 폐허를 그냥 없애버리지 않은 그들이 참으로 대단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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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딕건축은 조각과 건축의 극단적인 특징을 모두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흔히 조각과 건축의 차이는 사람을 위한 내부공간을 가지느냐 아니냐에 있다고 말한다. 하지만 이는 건축의 내부적 공간 형성에만 초점을 맞춘 것으로, 건축물이 컨텍스트에 영향을 받을 수 밖에 없으며 도시와 맺는 관계의 중요성을 간과하기 쉬운 생각이다.

중세의 교회마저도 단순히 내부 공간의 수직성만이 중요하진 않았다. 종교 건축은 그 마을 구조에서 중심이 되는 역할을 했다.

교회를 주변으로 도시가 가장 활발하게 움직였고, 교회 앞에서 장이 열리는 전통이 아직 남은 도시들도 있다.


예술과 건축이 경계없이 넘나들던 시대의 사람들에게 조각과 건축에 대한 질문을 하면 어떤 대답을 들려줄지 궁금하다.

어쩌면 근대 이후의 우리는 무언가를 정의할 때, 다른 것과의 차이를 말하는 버릇이 생겨버린 건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그것이 극으로 달릴 때, 편을 가르게 되고 사회는 분열된다. 

모든 것을 이분법적으로 가르는 것은 경계해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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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일생동안, 그것을 즐기든 그렇지 않든 여행을 한다. 인생은 여행과 같다고 말하기도 한다.

사람들은 잘 인지하지 못하지만, 여행객들이 도시마다 보러다니는 것의 대부분은 건축이다.

건축은 그 도시와 오랜시간 함께해 온 가장 큰 흔적이자 지금 도시가 살아가고 있는 모습을 가장 쉽게 보여주는 지표이기 때문이다.


수많은 청년들이 각종 미디어의 바람에 자극을 받아 유럽여행을 떠나고, 유럽의 도시들을 보고 돌아가는 비행기에서 한탄을 하곤 한다. 

왜 우리나라는 이런 곳이 없을까.


그것은 우리가 자꾸만 지나온 흔적을 지우려하고, 우리 그대로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을 부끄럽게 여기기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비단 정치인 한 사람의 문제도, 재벌과 친일파 때문만도 아니다.


있는 그대로 두는 것은 흔적이 되고, 흔적은 역사가 된다. 

오래되고 낡았다 생각하는 것에서, 그것이 우리의 삶이자 가치임을 볼 수 있어야 한다.

단순히 관광객을 모으기 위함만은 아니다. 그것이 우리가 역사를 기억하는 방법이며, 정체성을 잃지않고 미래를 준비할 수 있는 길이다.


아직은 우리에게도 가치있고 재미있는 곳들이 많이 남아있다고 생각한다.

이제라도 그것을 알아보고, 잘 가꾸어 가는 노력이 필요하다.




Kolumba Museum, Peter Zum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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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만나는 피터 줌토의 건물이다.

쾰른 대성당을 지나, 어느 대도시에서나 만나는 브랜드로 가득한 쇼핑거리를 통과하고 나면 콜룸바 뮤지움이 있다. 


쾰른 외곽의 벌판 한 가운데에는 줌토스러운 종교건축이 하나 있다. 사실 그 건물을 보러가고 싶었으나...


Bruder-klaus-kapelle


© Samuel Ludwig © Samuel Ludwig

교통편이 아주 열악해서 하루종일은 걸릴 것 같아 포기했다. 다음에 쾰른을 찾을때는 꼭 가볼테다.


콜룸바는 내가 모르던 건물인데, 0Fany형이 말해주지 않았다면 놓쳤으리라.

왜 여태 이 건물을 몰랐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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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룸바 뮤지엄은 St. Columba Church가 있던 자리다. 

2차 세계대전으로 폐허가 된 곳을 Gottfried Böhm고트프리드 뵘에 의해 Madonna of the Ruins폐허의 마돈나 라는 애칭으로 불리는 예배당이 지어졌다.

그리고 2005년, 공모에서 당선 된 줌토에 의해 지금의 미술관이 지어졌다. 

폐허가 된 고딕성당과 1950년의 예배당, 현대의 미술관이 하나의 건물이 된 것이다.



이 사진은 뵘의 예배당이 지어지고 중세성당의 발굴이 이루어진 후인, 1982년에 찍힌 사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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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장소에서 이렇게 시간의 차이를 두고 이루어진 건축행위가 현재까지 이어지며 하나의 건축이 되었다는것이 정말 놀랍다.


예전 모습과 이렇게 나란히 두고보니, 쾰른 대성당이 보이지 않게 되었다는 건 좀 아쉽다.

건물 안으로 들어가면 쾰른 대성당이 보일테니 그럼 들어가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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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문은 아니지만, 미술관을 이용하지 않을 시민들도 언제든 성당의 유적지를 볼 수 있도록 따로 문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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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여태 내가 이 건물을 몰랐을까. 일부를 보았을 뿐 인데 심장이 뛰기 시작했고 얼른 내부로 들어가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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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제된 재료의 사용으로, 내부에서도 깔끔하고 고급스러운 느낌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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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이 바로 고딕, 1950년 그리고 현재가 공존하고 있는 곳이다.

콜룸바 뮤지엄을 위해 특별 제작한 회색벽돌이 폐허가 된 교회의 벽과 빈틈없이 맞물려 있고, 그 위쪽에는 촘촘한 구멍들을 만들어두었다.

채광과 환기, 습도유지가 이루어짐과 동시에 외부에서 나는 도시의 소리들이 침투해온다.


세월의 흔적과 전쟁의 참혹함을 볼 수 있는 고딕 교회의 폐허는 경외감이 들게 하고 은은한 빛은 신비감이 들게 하지만, 그와 동시에 도시의 소리가 들려오는 것은 우리가 현재에 있음을 깨닳게한다.

역사는 과거에 머물러있는 것이 아님을, 연속되고 있음을 인지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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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 0Fany형을 건덕후라고 부르는 사람이 몇명 있다. 나는 건축을 좋아하긴 하지만 그렇게 덕질을 하는 사람은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이 건물을 보면서는 계속 하악하악 댈 수 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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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룸바 뮤지엄에서는 미술품에 그 어떤 설명이나 작가의 이름이 적힌 패널을 찾을 수 없다.

하지만 보자마자 이 작품은 리차드 세라의 작품이라는 느낌이 확실히 들었다.

나중에 확인해 보니, 건축공모를 시작하기 전에 유적의 재탄생을 위한 일종의 선언으로써 세라의 작품을 이 곳에 설치 했다고 한다.


세월의 흔적이 그대로 드러나는 붉은 벽돌과 붉은강철 그리고 회색벽돌의 조화가 자연스럽고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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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부마감으로 쓰인 벽돌은 구조적으로 버틸 수 있는 한, 최대로 가늘고 긴 크기로 특별히 만들어졌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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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으로 보이는 것이 뵘이 설계한 폐허의 마돈나-예배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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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1층의 교회유적을 둘러본 뒤, 상부층에서는 전시공간이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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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이상 말이 필요한가?



계단실은 폭이 좁고 깔끔한 마감을 하고 있다. 수직으로 이동하는 전시공간까지 정적인 분위기를 유지할 수 있도록 했다.

다만, 일반적으로 이용하는 수직동선이 이 계단 뿐이라서 사용자가 서로 엇갈려 위아래로 이동하기에는 불편하다.

Metric handbook에 나오는 수치에따라 일반적 설계로는 절대 만들지 않을 계단이다. 


관람객들이 시끌벅적 수다를 떨면서 계단을 오르내리거나, 초등학생들이 계단에 앉아 도시락을 까먹는 행위 따위는 내 건물에서 만들지 않겠다는 건축가의 확고한 의지가 엿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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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밖으로 쾰른 대성당이 보인다. 1982년의 사진에서의 그 모습 그대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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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비된 책을 읽을 수 있도록 만들어진 공간인데, 이 곳을 꾸미기 위한 나무, 가죽 등의 모든 재료 또한 줌토가 일일이 정한 좋은 품질의 것들 이라고 한다.

갑자기 진한 색감의 고급스러운 공간으로 바뀌어서 그랬는지, 편안함보다는 부담스럽게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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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룸바 뮤지움의 총 16개의 크기, 비율, 의 유입 정도 등이 다른 전시 공간을 가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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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개로 구획된 전시공간은, 각 전시품의 성격이나 크기에 맞추어 수용 할 수 있다.


현대미술관은 보통, 전시 공간의 유연성을 위해 유니버셜 스페이스를 만드는데에 중점을 두는 편이다.

하지만 줌토그런 공간을 만들 수 있었음에도, 볼륨을 조절하여 크기가 다른 전시실들을 만들고 공간을 구획했다. 

공간의 깊이감과 위계, 다양성이 만들어졌다. 

정확한 의도는 알 수 없지만, 콜룸바 뮤지움이 일반 공공미술관 처럼 많은 전시물과 잦은 특별전시가 이루어지는 미술관이 아니기에, 좀더 완성도 높은 전시공간을 위함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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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에 이어질 곳은,

독일건축박물관이 있는 프랑크푸르트와 친환경 도시 프라이부르크다.





  1. 완공 된 1880년 부터 워싱턴기념비가 세워진 1884년 까지 가장 높은 건축물이었다고.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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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Archist _Teo 트랙백 0 : 댓글 10